남편 작사, 작곡
직장인의 일상은 거기서 거기. 일찍 퇴근하면 밀린 집안일부터 해야 될 일을 하나하나 하느라 쉬거나 나를 위해 줄 여유 시간이 없고, 늦게 퇴근하면 말 그대로 시간이 없어서 뭔가 할 여유가 없다. 타 직장과 비교해서 이른 퇴근을 하는 나도 각종 집안일에 치여 나를 돌볼 시간이 없는데 여타 직장인들의 삶은 상상만 해도 피곤이 밀려온다.
2박 3일 동안 집정리를 비교적 많이 했지만, 언제나 상태 유지는 그날 하루다.
개수대엔 설거지 그릇이 끝도 없이 쌓이고 마른빨래는 건조기에 머물러 있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과자 봉지는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한 주는 유독 피곤했다. 안전의 중요성 때문에 재난 대비 대피 훈련, 소방 안전 훈련을 이틀에 걸쳐하느라 운동장으로 대피했고 2학년 아이들을 위한 성폭력예방 인형극을 두 시간 관람했다. 이런 여러 가지 행사 덕분에 아이들은 정말 들떠버렸고 아침 시간 내내 주의를 계속 주어도 시끄럽다. 꽥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이것도 아동 학대다. 끝없이 말을 하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난 비교적 조용한 사람이라서.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야 되는데 퇴근 후 15분 거리 걷기도 버거워 병원 가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후딱 밥을 해 준 후 브런치의 밀린 글도 읽고 법문도 듣고 있었다. 남편이 퇴근해 온다. 저탄고지 생활 중인 남편은 퇴근하면 알아서 고기를 굽고 식사를 챙긴다. 고마울 따름이다.
남편을 부엌에 두고 방에서 할 일을 한다. 몰려오는 피로감. 내일은 금요일이니 하루만 견디자. 돌아서면 금요일은 금방이고, 뭔가 모르게 부산했는데 할 일을 제대로 안 한 것 같고,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달력은 두 장 남았는데 또 한 주가 지나가려 한다. 늘 돌아보면 후회하는 날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쓸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혀 법문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
달그락, 부스럭, 짤그랑, 탁, 쏴아~~ 온갖 소리들의 향연이다.
순간 떠오르는 부엌과 식탁의 모습. 아이들이 던져 놓은 과자 봉지, 저녁밥그릇,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감.
어느 클래식 음악보다도 더 안정감을 주는 소리다.
어느 가수의 음악보다도 더 흥겨움을 주는 소리다.
어느 댄스 음악보다도 더 춤을 추게 하는 소리다.
자연의 소리보다 더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소리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
즐겁다. 너무 엉망이어서 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내가 깨끗한 집이 좋으니 청소를 하는데 다른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는 걸 원망 않기로. 또한 내가 힘들고 피곤하면 나를 쪼지 않기로 했었다. 피곤한 나를 위해 포기를 해버렸는데 남편이 두 손 걷고 하고 있다.
법문을 다 듣고 부엌으로 가보았다. 반질 반질한 식탁 위는 아무것도 없고, 개수대는 물방울만 남았다.
"도저히 보고 못 견디겠어."
"진짜? 아니 당신이 웬일이야? 신혼 때는 깨끗한 곳만 골라 걸으면 된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하더니."
"무슨 말이야. 도저히 못 보겠는 걸. 그리고 당신 위해서도 내가 해야지. 집 상태를 보니 당신이 엄청 피곤한가 보다 했어."
17년 잔소리와 교육의 결실이다.
그 와중에 싸움만 없었더라면 더 현명한 아내였겠지 하는 아쉬움이 무척 많지만, 무수한 잔소리와 싸움 끝에 남편은 달라졌다. 상대를 내 입맛에 바꾸려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고, 그릇된 생각이기도 하지만 생활의 기본은 강조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느낀다. 보고 듣고 몸으로 느끼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기본은 안 되는 남편이었지만, 달라졌고, 나를 위해서 노력해서 고마웠다.
오늘 우리 집 부엌에서 남편이 작곡한 멋진 음악을 생각하면,
앞으로 싸울 일이 생겨도 한 발 물러서서 진정할 수 있으리라.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