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도 끊은 지 한 달이 되었는데 감량이 안된다. 먹는 건 줄였지만 움직이지 않아서이다.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급식마저 안 끊었다면 더욱더 증량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저울 위 숫자가 주는 압박감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살면서 이런 숫자를 마주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영원히 173에 52킬로로 살 줄 알았다. 웬만한 여자들이 상상 못 할 정도로 많이 먹어도 안 찌는 게 30대 후반까지는 계속되었으니까.
아 어쩌다가 이렇게 어마 어마한 숫자를 보게 되었나? 이것도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양, 열량, 운동과 열량 소비, 에너지 등에 대해서 무지해서 벌어진 결과이다. 살이 안 찌던 시절은 많이 먹긴 했지만 삼 시 세끼만 충실히 먹었고, 주전부리를 일체 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은 배우고 알아나가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런 생각 아래 또 아들이 떠오른다. 저렇게 머릿속에 든 것마저 차곡차곡 비워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또 한 번 걱정이 된다.
우울로 움직이기 싫고 안 움직이니 먹은 것은 차곡차곡 쌓이고, 또 움직이기 싫고 악순환이다. 아침에는 사소한 말다툼이 커졌고 우여곡절 끝에 화해를 했다.
그리고 남편이 걸으러 가자고 제안을 한다. 예전에 같이 걷는 남편이란 글도 썼는데, 같이 걸어주고 대화도 해 주던 일상을 출장이 뺐아가 버렸다. 6월부터 5개월 동안 같이 걸은 기억이 없다.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증량된 몸은 걷는 것도 힘듦을 느낀다. 가볍지가 않다. 좀 더 걷고 운동하지 않으면 정말 몸이 큰일 날 거 같다. 어찌 됐든 다행히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조금 걸으니 당신 예전 얼굴이 보이는 거 같네. 아침에는 퉁 붓고 턱 언저리에 살이 쪄서 장난이 아닌 모습이었는데."
'치. 10분 걸었다고 얼굴이 달라지남. 말도 안 되는 소리.' 혼자 머릿속으로 중얼거린다.
"저기 칼국수 집 맛있는데 점심 먹으러 가자."
"그래? 그럼 먹고 나서 또 걸을래?"
"그러자."
"예전에 브런치에 같이 걷는 남편이란 글도 썼는데, 그 글이 거짓말한 게 돼버렸네. 글이 무색하게 같이 안 걸은 지가 몇 달 째야? 6, 7, 8, 9, 10, 5개월째 접어든다. 그동안 차곡차곡 지방만 쌓였네."
"같이 걷는 남편이 아니고 가치 걷는 남편이네. 걷기의 가치도 훅 걷어내고, 같이 걸으며 대화하는 것의 가치도 확 걷어내고."
"어. 그러네. 가치 걷는 남편 맞네."
이렇게 남편은 또 웅, 이게 뭐지? 나를 또 들었다 내렸다 한다. 언제나 말장난의 귀재라. 아래 글 데가리 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