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참 좋은 곳이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살아도 내가 태어나서 오래 세월을 살아온 고향만큼 좋은 곳은 없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고향이 좋다. 만 38년을 살아온 익숙한 곳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40년 가까이 산 곳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온다는 것이 나에겐 참 힘든 일이었다.
엄마, 아버지를 떠나야 되고 힘들 때 의지가 됐던 언니도 떠나야 했다. 졸업한 학교를 떠나야 했고 많은 동기들과 선후배가 있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진작에 남편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더라면 오히려 고향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을 것이다.
혼자 고군분투하며 두 아이를 키운 곳을 떠나야 했고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을 떠나는 아쉬움은 참으로 컸다. 누가 들으면 정말 먼 곳으로 간 줄 알겠다. 외국 유학 가고 이민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이리 유난인가 싶겠지만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나에겐 실로 큰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난 고향이지만 내 머릿속엔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립고 그들에 대한 기억도 많다.
나의 사랑하는 고향엔 부모님도 아직 살아 계시고 큰언니와 형부도 계시고 친구들과 제자들도 있다. 제자들 중에는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간 아이들도 꽤 되니 아마 나처럼 삶의 터전이 바뀌게 될 것이고 일찍부터 외지 생활에 익숙할 테니 고향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외지로 간 제자들도 있지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도 있다.
고향에서 6학년을 두 해 연거푸 했던 적이 있다. 2005년, 2006년.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 2005년 가르쳤던 6학년 제자를 보게 되었다. 제자는 다육식물 기르기에 대한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제자의 유튜브명인 팜스맨과 이름을 검색엔진에 넣어보았다. 제자는 청년농업인으로 여러 상도 수상하고 강의도 나가고 여러 신문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그 해는 워낙 출중한 남학생들이 많은 반을 맡았고 그 남학생들과 정말 좋은 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 제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리 반 부반장도 했었고 주먹이 세다고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짱으로 통하는 아이였다. 그런 제자가 부드러운 모습으로 유튜브에 등장했다.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겼고 제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저 제자의 업체와 이름이 검색을 하면 나오는 게 좋았고 제자가 신문에 난 게 자랑스러웠다. 청년 농업인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는 모습도 좋았다. 마치 내 자식이 잘된 것 마냥 기뻤다.
그렇게 제자의 소식을 나만 몰래 훔쳐보기를 몇 년을 했다.
지난 설날 마지막날 부모님 바람 쐬 줄 곳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언니가 제자가 운영하는 팜다원을 검색하게 되었다. 제자가 불편해할까 봐, 연락 안 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선생님이 가서 설레발을 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잘 자란 제자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이게 부모 마음에는 못 미치겠지만 1년짜리 반쪽 부모 노릇을 한 선생님 마음 아닐까 싶다.
폐 끼칠까 봐 낯설까 봐 제자는 원하지 않을까 봐 등등의 생각으로 가 볼 생각을 못했는데, 내가 가자 한 것도 아니고 언니가 검색해 찾은 곳이니 가야 될 당위성도 생겼다.
"가더라도 00 이가 대표니까 없을 거야. 00이 엄청 바빠 보이던데, 그리고 명절 끝인데 있겠어? 그래도 한 번 가보고 싶네."
혼자서 묻지도 않는 남편에게 설레발을 쳤다. 있으면 반갑겠지만 한편으로는 없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낯설어할까 봐, 폐 끼칠까 봐 등등 온갖 고민을 하면서.
팜다원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계산하는 조그만 사무실에 들어섰다.
한 청년이 내가 들어서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인사를 한다. 00이었다.
"00아. 000 선생님."
얼떨떨한 우리 00 이는 잠깐 멈칫하더니 깜짝 놀라며 선생님 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제자가 못 알아볼 정도로 세월이 지나버린 것이 아쉬울 뿐이다. 거의 20년이 흘렀으니.
32 아가씨 적에 만난 제자였다. 세월이 흘러서 제자가 32이 되었다.
몇 년 뭉그적거리다가 이런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냈다.
입장권을 사고 차를 마시며 다육이도 고르고 따뜻한 온실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자는 시키지도 않은 군고구마까지 구워 나르며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줬다.
팜다원은 입장권을 사면 음료를 마시고 입장권에 해당되는 만큼 다육식물을 고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계산을 하러 갔더니 나머지 금액은 안 받겠다고 하는 걸 절대 안 된다며 계산을 했다.
기특한 우리 제자는 그걸 예상이라도 했는지 따로 아스파라거스 화분 세 개를 챙겨놓았다.
팜다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그리 가벼울 수가 없었다.
친정 엄마는 덩달아 딸 키운 보람을 느끼신 모양이다.
제자의 사업이 흥해서 돈도 많이 벌고 장가도 잘 가고 그렇게 잘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00아 너무 고마웠다. 또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선생님은 널 항상 응원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제자가 선물한 아스파라거스. 청명한 초록색이었는데 직장 다니느라 바빠 환기를 못 시켰더니 시들어간다. 오래오래 옆에 있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