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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 몇 겹은 깔아야 되려나?

by 나무 향기

허리가 난리가 났다. 현대인 중에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없는 어른이 있을까마는 방학 내내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니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 가는 게 에지간히도 싫다.

초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원을 갔으면 말짱할 것을 삼주 전부터 시작된 증상을 지금까지 방치한 나는 무지 게으른 사람이다.

나름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하지만 부지런함을 보이고 싶어서 부지런한 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보이는 학교 성적, 남들에게 보이는 일의 성과,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 그 앞에서만 부지런한 내가 아닐었을까 하는 생각에 같이 사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조금 올라온다. 부지런하지 못한 듯 여겨지는 같은 지붕 아래 세 남자들에게 니들은 왜 이리 부지런하지 못하냐고 타박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자고 일어날 때 아프던 허리가 이제는 앉았다 일어날 때 아프고 할머니처럼 허리춤에 두 손을 얹고 엉거주춤 허리를 뒤로 젖히고 걸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건 필시 개학날 옮긴 교과서 탓이야라며 병원 진료에 게으른 나 대신 교과서 탓을 해 본다.


월급 루팡은 되지 말자가 승진을 포기한 이후 내 삶의 모토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다. 도저히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수는 없어서 사물함에 팔을 뻗치고 90도 자세로 서서 EBS 오디오 어학당을 틀어놓고 영어프로그램을 듣는다.

뭐라도 집중할 수 있으면 허리 아픔이 덜 느껴지려나 싶어서 시작했지만 이것도 영 글렀고, 소설을 들고 읽다가 교실을 걸었다가 온갖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본다.


그 방법 끝에 브런치가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보지도 못했지만 댓글로 소통하면서 가까운 친구 마냥 느껴지는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작가님 몇 명의 글을 오랜만에 읽고 댓글도 달아본다.

글도 올리지도 않는데 구독자가 조금 더 늘었다. 아마 신규 작가님들이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고, 거의 이 목적이겠지만, 늘 염세적으로 생각하는 '나'이니 머리 한 번 흔들어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내 글이 그다지 나쁘진 않았나 보지 하는 소박하고 거짓말 같은 위로도 나한테 보내 본다. 이래라도 안 살면 삶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으리. 종이 한 장 뒤집듯 생각 바꿔가며 즐거움을 찾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위로해 본다.


멤버십을 연 작가님들은 글에 자신감이 있어서일 테고, 멤버십을 열지 않았지만 딱 봐도 글을 잘 쓰시는 작가님들은 그 나름 또 글에 자신이 있어서, 혹은 책을 출간한 이력도 있고 앞으로도 책을 출간하실 것이어서 멤버십 따윈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일 테지 짐작해 본다.

그 중간 지점쯤에 어정쩡하게 머무르고 있는 나는, 천상계와 지옥 사이의 연옥에 있는 것인지, 어디다 발을 붙여야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득, 퇴근 시간을 넘긴 이 시점에서 철판 몇 겹이라도 깔고 좋던 나쁘던 비문이든 현란한 문장이든 다시 용기 내어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과연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그렇기에 아픈 허리 부여잡고, 앉을 수가 없어서 종일 서 있었던 내가 이렇게 브런치를 열었다.

그래 그렇다. 브런치를 한 번에 통과할 땐 내가 그래도 글은 좀 쓰나 보다 어쭙잖은 허영심이 조금은 있었지만(솔직하게 많지는 않았다. 난 늘 나한테 자신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저 무지하게 기뻤던 2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황송하기까지 했었다.) 글 앞에서 갈수록 쪼그라드는 나라 힘들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그렇다.

뭐 어때? 나는 나이고, 내가 글을 잘 썼으면 그만두고 작가가 됐겠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글에 대한 열정이 많았으면 되든 안되든 열심히 썼겠지.

마구잡이로 쓰다 보니 열정으로 마침표를 찍는구나.

철판 몇 겹 깔고 열정을 불살라야 되려나?

이후의 행보는 나도 모르겠다.

개점이 될지, 장기휴무가 될지, 폐점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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