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 가의 테스
Call me Tess
나를 테스라고 불러주세요
낙후된 농촌의 낙농장 수습생으로 있는 에인절(Angel)은 시골뜨기들과의 생활을 즐기지 않았으나 점점 그들의 삶에 녹아들면서 그들을 각 한 명의 개별적인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농장에서 테스(Tess)를 만나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신비롭고 황홀한 여성상을 보게 된다. 테스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에인절은 테스를 아르테미스(순결의 여신), 데메테르(결실의 여신), 혹은 다른 어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보란 듯이 "나를 테스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답한다. 자기를 아름다움 혹은 백색의 순결로 이상화된 여성이 아닌, 테스라는 한 개인으로 여겨 달라는 그녀의 당당하고 주체적인 요구가 함축되어 있는 이 말은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어구이다.
에인절과 테스는 결혼을 약속하고 신혼 첫날 밤에 충격의 대화를 하게 된다. 테스는 예전에 알렉(Alec)이라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해 아이를 출산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여기서 에인절의 태도를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미 테스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용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테스의 과거에 대해서는 자기가 사랑했던 것은 “당신의 모습을 한 다른 여인”이라고 하면서 자기부정의 모순을 보인다. 테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기까지 긴 과정을 겪었으면서 테스의 과거 고백에 갑자기 돌변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당신의 모습을 한 다른 여인’이라는 것은, 에인절은 테스를 아르테미스, 데메테르로 성적 대상화하여 사랑했으나 테스의 고백 이후에는 테스를 그저 사기꾼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에인절은 브라질로 떠나고 테스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테스는 알렉과 다시 만나게 되고 에인절이 브라질에서 돌아와 테스를 찾았을 때, 테스는 알렉을 죽이고 에인절을 따라간다. 그리고 살인죄로 처형을 당하게 된다. 이야기는 테스의 ‘순결성’에 꽤나 집착을 한다. 당시 19세기 말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여성은 남성에게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 ‘순결한’ 혹은 ‘방탕한’의 두 가지 형용사만을 가진 이분법적인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철저히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이 ‘순결’하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고 ‘방탕’하면 사기꾼이고 타락한 존재가 되는 현실을 에인절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테스는 본인의 주체적인 뜻에 따라 남성을 선택하고 죽일 수 있는 인물이다. 이것은 본인을 다른 호칭이 아닌 ‘테스’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 주체성과 매우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테스 역시 알렉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일관하여 알렉에게 스스로 성적 대상화가 되도록 자처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보아 테스 역시 남성 위주의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보수적인 남성 위주의 당대 순결 이데올로기 속에서 "나를 테스라고 불러주세요"라는 그녀의 주체적인 태도는 이 소설에서 매우 큰 상징성을 지닌다. ‘순결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진 못할지라도 한 개인으로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테스를 통해 당시의 성 이데올로기와 여성론적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