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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Oct 02. 2020

그리스인 조르바와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쾌락적 삶에 대한 찬양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저항적 투쟁이라고 여긴다. 그는 쾌락적 혹은 필연적 삶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관조적 삶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의 초인의 자유(현재에 집중하는 초인적 삶)를 추구한다. 또한 그는 생계유지라는 필연적 운명을 인정은 하면서도 구애받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자유의 억제를 거부하기 위해 민족해방전쟁에서 이탈하며, 자유로운 삶을 목적으로 쾌락적 삶을 찬양한다. 이것은 그가 생계유지의 단절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은 자유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기 때문에 목재사업이 참혹하게 무너진 현장에서도 흥겹게 춤을 춘다. 이것은 진정으로 필연적 삶의 운명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우연’이 매우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레이먼드는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하고,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가 우연히 만나고, 아마데우와 얽히는 멘데즈의 인연이 또한 그렇다. 이 영화에서는 이것들이 억지로 얽매이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세계관이라는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관은 과학적 성과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증명을 넘어선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연과 필연 혹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세계관적 이해와 해석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아마데우를 통해 드러내는 우연의 개념은 인간의 삶을 어떤 고정된 형식이나 굴레에 한정시키거나 필연 혹은 운명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일체의 외적인 강압 내지 강제에 대한 거부를 함축한다.








 우리는 보통 (포르투갈로 향하기 전의) 레이먼드의 인생과 유사한 삶을 살며 조르바의 가치관을 꿈꾼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태어남과 동시에 어떠한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자라나고 그 안에서 살며 그 안에서 죽는 삶이 '정상'이라고 치부되는 환경이 우리의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프레임에 대해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것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우연’을 가장한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사회가 정한 기준에 가까워지지 못하면 그것을 ‘불행’이라고 간주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조르바의 세계관에서 가져올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억압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에 집중하는 그의 자세를 통해 우리는 사회가 정한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가 없는 온전한 ‘나’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먼드가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순간,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마리아나와 함께 머물렀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의 우연들을 우리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두 작품은 결국 우리를 억압하는 건 우리 자신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진정한 자유를 위해 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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