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To live, to err, to fall, to triumph, to recreate life out of life! A wild angel had appeared to him.
산다는 것, 실패한다는 것, 타락한다는 것, 승리한다는 것,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어떤 야성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주인공 스테판 디덜러스(Stephen Dedalus)는 학교에서 지옥불 설교를 듣고 종교와 예술인의 기로에서 고민한다. 교장으로부터 사제가 되겠냐는 제안을 받지만 이내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니는 한 소녀(seabird girl)를 보며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깨닫는다. 스테판은 예술은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며, 소녀는 그의 새로운 예술 세계가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스테판은 바닷가에서 각성을 하기 전까지 현실에서 많은 고뇌를 겪는다. 가족들의 정치논쟁 속에서 집의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학교에서 들은 지옥불 설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그는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성장하면서 내면 또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가 성장하는 배경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인데, 20세기 당시 아일랜드는 오랜 시간 동안 영국의 지배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하여 작가(James Joyce)는 스테판을 통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절망하는 아일랜드인을 보여준다. 스테판은 박해받아 죽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스테판은 ‘순교자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a martyr)’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디덜러스는 미로 속을 탈출한 디덜러스를 떠올림과 동시에 태양에 가까이 날아서 날개가 녹아 바닷가에 추락한 이카루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젊은 청년이 예술가가 되기까지 겪게 될 고난을 알려주는 장치이다. 결국 스테판은 교장의 사제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거부하고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이것은 “I will not serve that in which I no longer believe, whether it call itself my home, my fatherland, or my church”라는 대사를 통해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 가족, 국가, 종교는 그를 억압하고 있는 굴레였고 그는 앞으로 이것들을 벗어던지기로 한다. 스테판은 바닷가를 걷는 소녀를 보고 황홀경에 젖는다. 작가는 이것을 ‘신성모독의 환희에 찬 외침(outburst of profane joy)’이라고 표현한다. 소녀는 ‘seabird girl’이라고 표현이 되는데 스테판이 나라, 가족, 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소녀는 스테판이 예술가로서의 각성을 하게 되는 매우 결정적인 매개체다.
이 소설은 현현(epiphany)이라고 하는,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영적 계시를 얻는 현시를 통해 청년이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이 소년에게 작가본인이 예술가로서 가져야 할 일종의 서사를 부여하는 듯하다. 따라서 삶을 재창조함으로써 작가가 글쟁이로서 혹은 다른 어떤 예술가로서의 성찰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작가도 본인의 야성의 천사를 찾았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