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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Dec 22. 2022

영혼없이 억지로 쓴 감상문

KBS-NHK-CCTV 공동제작 다큐멘터리 ‘신 실크로드’

5년 전 아프리카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서 하루 캠핑을 했다. 단순 관광이었고 가이드가 음식과 베이스캠프를 모두 준비해주는 비교적 편한 일정이었음에도 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2시간 동안 낙타를 타는 것은 처음에는 낭만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니 허리가 하체와 분리되는 듯한 통증과 사타구니가 쓸려서 나중에는 피가 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경험했다. 모든 곳이 화장실이었고 몸을 아무리 털어도 끝없이 나오는 모래에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도 누군가 다시 가겠냐고 물으면 늘 그러하겠다고 답한다.


당시 가이드는 우리 발밑에 있는 모래언덕안에는 고대 국가의 요새가 있을 수도 있고 2미터거인들의 문명의 흔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모래 언덕 위에 누워 하늘엔 끝없이 펼쳐진 별들이 쏟아지고, 땅속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명의 흔적이 있다고 생각하니 처음 느껴보는 신비로움이 온몸을 휘감았던 기억이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서역의 모나리자’를 발굴하는 본 다큐멘터리 4화를 보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대에 타클라마칸 사막은 실크로드를 거쳐 동남아를 횡단하는 상인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었겠지만 경계에 고창(高昌, 가오창)같은 오아시스 도시가 들어서면서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크게 사업을 하는 상인들에게는 반드시 거쳐가는 도시가 되었다. 수도승들도 상인들이 북적이는 국제 무역로를 따라 이동하였기에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사원이 번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곤륜산맥과 서역남로가 관통하는 길 부근에 있는 최대 오아시스 도시 ‘호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호탄시는 신장위구르 자치구로서 실크로드의 교역도시로 번영해왔다. 호탄의 유적지 ‘단단위리크’에서 ‘서역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벽화를 찾는 여정이 다루어지는데, 나는 여기서 왜 굳이 ‘모나리자’라고 호칭을 쓰는지 의문이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5년에 방영되었는데 이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유럽 우월주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NHK-CCTV의 표기를 여과없이 그대로 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인자한 여성의 얼굴을 담은 작품이라 하여 단순히 모나리자라는 이름을 차용한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독특한 붓놀림 화법인 ‘굴철선’으로 그려진 이 여인상은 화법과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매우 달라 보인다.







 또한 남쪽의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가 페르시아 등 서쪽의 문화와 만나서 호탄에서 독특한 불교예술로 꽃 피었고 그 문화가 당의 도읍지 장안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갔다는 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철선묘 기법의 법륭사 금당벽화는 고구려 담징이나 백제계에 의해 그려졌다고 밝혀진 바, 불교예술이 고구려와 백제를 건너뛰고 바로 일본으로 향했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NHK-CCTV 공동제작이고 우리나라 KBS는 판권만 빌려왔다는 점을 아주 나중에 알고 나서야 왜 이렇게 쓰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점을 말미암아 상당 부분 그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음을 참고해야만 했다.







 한편 요가 수련을 한 지 2년째 접어들었고 산스크리트어 만트라를 외우는 나로서 매우 흥미롭게 5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잘 알려진 쿠마라지바는 불교의 전래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쿠마라지바는 4세기 중엽 쿠차왕국의 왕자로 태어나 9세때 인도 간다라 지방(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카슈미르에서 유학을 하고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불경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18세에 승려가 되어 쿠차왕국에 불교를 퍼뜨린다. 위대한 승려로 추앙받던 그는 당시 중국의 5호16국 시대의 전란속에 장안으로 끌려가 왕의 명령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게 된다. 한 마디로 불교를 한자로 쉽게 번역함으로써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원전에도 없는 그가 창조해서 만든 구절이다. 뿐만 아니라 ‘극락’, ‘지옥’, ‘번뇌시도장’도 그가 창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산스크리트어, 쿠차어, 한문 등 최소 3개 언어를 구사했을 그는 처음으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자는 아닐지라도 최고의 번역자로 손꼽힌다. 아마도 글자 자체를 옮긴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옮기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번역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남이 씹은 밥을 받아서 내입으로 씹어 다른 이에게 먹게 하는 과정과 같은 경전 번역의 고충과 난해함 그리고 깨달음. 잘못하면 구역질나고 잘못하면 내가 삼켜버리고 잘못하면 상한 독을 첨가하는 것이다.’ 중국인도 인도인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파계승이 산스크리트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그 어려움은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공부하고 교육을 하기를 희망하는 한 학생으로서 그의 일생과 철학을 깊이 가슴에 새기었다. 단순히 글자만을 익히고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뜻과 문화, 철학을 옮기는 것에 뼈를 깎는 고통으로 한평생을 바친 그의 생을 접하며 훗날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새겼다. 그리고 오늘도 만트라를 외우며 매트위에 오른다.   






 - 4부 타클라마칸 사막 아래 잠들어 있는 천 년 불교 왕국 호탄 “서역의 모나리자”

https://www.youtube.com/watch?v=gFSLYuo5Kuo&list=PLk1KtKgGi_E5vDnSvwqJB38umxqrH-7GI&index=4&t=2095s




 - 5부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경 등 주요 불교경전을 번역한 쿠마라지바(구마라습)와 쿠차 왕국 “동으로 간 푸른 눈의 승려”

https://www.youtube.com/watch?v=rvyIEKDLLvM&list=PLk1KtKgGi_E5vDnSvwqJB38umxqrH-7GI&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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