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새로 태어난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곱씹어보았을 때
"있잖아 쏨바디야, 요즘 널 보면 제2의 버전인 쏨바디로 사는 것 같아. 그냥 내가 느낀 바는 그래"
작년 말 즈음 오랜만에 만났던 친한 친구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며칠 전, 코로나가 기승이지만 정말 친한 친구의 ( 요즘 용어로 찐친이라고 부르는) 청첩장을 받기 위해 모였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도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30살 이후의 쏨바디를 보면 뭔가 달라진 게 보여. 마음이 더 단단해졌달까? 자기 확신에 찬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여"
물론 나 자신도 어느 정도는 느낀바였지만, 저렇게 제삼자가 직간접적으로 해주는 말들은 가끔 그 어느 것보다 객관성이 있게 느껴진달까. 그래서 문득 나의 지난 2~3년 동안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떤 '트리거 포인트' (계기가 되는 사건 등을 지칭) 들이 있었는지 이곳에 상세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진심으로 적은 만큼 누군가에 이 글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아마 기억하건대 그 시작은 아래 첨부한 동기부여 영상들의 반복 시청이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동기부여 영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당시 막 이직했던 현 직장에서의 영어 사용 빈도가 높은 관계로, 영어로 관련된 영상을 찾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먹고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기부여 영상을 찾게 되었고, 영어공부 겸 동기부여라면 나쁘지 않아 보여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불변의 진리'
모든 변화는 나 자신 안에서 자각이 일어날 때만 변화할 수 있다. 그러니깐 즉 타인이나 외부에 의한 동기부여는 일종의 1가지 장치일 뿐 깨달음은 본인 자신에게서 일어나야 한다. 타인은 그 알을 두드리거나 깨지는 데 도움을 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나 또한 처음부터 내 안에서 깨달음이 오게 된 것은 아니었고, 동기부여 영상 시청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 다양한 '동기부여 영상'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1가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었다.
시인 신동엽 님의 시를 인용해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아라" 이거였다.
다만 위의 소제목 '꾸준한 반복 신청'을 빨간 글씨로 표시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여러 번 반복을 통해 이는 체득될 수 있다. 곱씹고 습관화하면서 내 안에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다.
왜 행복도 노력이고 습관이라고 하지 않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KHOsHXddl3U&t=45s
https://www.youtube.com/watch?v=5R2EV5aoS8Y&t=634s
작년 봄, 나는 내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사실 한국 사회의 나이의 관점에서 내 나이에 음악을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건 굉장히 일반적인 일은 아님이 분명한 것 같기는 한다. 가끔 레슨을 통해 만나게 되는 선생님들도 흔하지는 않은 케이스라며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다. ( 좋게 표현하자면)
그러니깐 내 나이 3X세,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도 리스크가 어느 정도 있는데 심지어 그게 음악이라니?
다만 나는 회사원으로 재직 중이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다소 부담감이 덜했다. 물론 예상보다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내가 발매할 음악이 경제적인 수익을 가져오지 못하리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던 사실이니 뭐 크게 놀랄 일도 없다.
"그냥 모든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내 음악이 별로든, 내 영어 발음이 별로든 타인의 의견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의견일 뿐이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런 타이밍이 오기까지 만을 기다리다가는 어쩌면 준비만하다가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할 수도. 아무튼 내 노래의 월별 청취자는 비록 6명이지만 나는 일당백으로 가끔 필이 충만한 날에는 내 노래를 반복 재생하고는 한다. (나는 유통 사이트를 통해 월별 청취자 집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가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 나이가 XX세 인데, 이제 ~를 배워서 뭐해? "는 잠시 접어두자.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ouaresomebody/37
작고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피로도는 계속해서 누적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이 피로도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나름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동심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별거 아니지만 가령 눈 내리는 날 밖에 나가 요즘 유행하는 '눈오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그것의 일환이다. 내가 마치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접할 때도 심드렁하기보다는 다소 호기심 있게 관찰하며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가장 가치 있는 건 순수함이에요.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모든 게 자연스럽기만 한데,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늘 각자의 시선으로 남을 평가하고 때로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죠. 순수했던 마음이 변하면서 삶이 복잡해지는 듯해요."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中-
아 한 가지 웃긴 일화를 덧붙이자면 몇 달 전 2살짜리 아이가 있는 친구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갔다. 친구의 아이와 놀아주면서 느낀 건 요즘의 아이들 장난감은 어찌나 재밌던지 심지어 책 조차도 다양한 소리와 장치들이 있었다. 친구 왈 "우리 아이보다 네가 더 장난감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은데? 너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설렘과 기쁨이 보여 쏨바디야. 다음에 우리 집 장난감 업데이트되면 또 놀러 와도 좋아?!"
때론 너무 각박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동심으로의 회귀'는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그러한 방식에 정답이 있겠는가 각자 본인만의 좋아하는 방식을 찾을 수 있기를.
누구나 그렇듯이 파도에 휩쓸리며 이리저리 외길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을 주기적으로 한다. 지금 이 브런치를 적는 것도 가끔은 의미 있는 건가?라는 생각 (현재 나의 구독자 수는 20명이다)
다만 여태까지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할까 말까 할 때 무언가를 하는 거, 특히나 이런 생산적인 행위는 적어도 훗날 그 당시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기록이라도 되었더란다. 더 나아가 우연히 방문하고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 모두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속삭여보자.
"내 나이 XX세,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
**커버 이미지는 본문과는 거리가 다소 먼 내용으로 한 때 인터넷에서 열풍이었던
"내 나이 XX세, 이젠 오직 돈 생각뿐이다"라는 밈을 차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