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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17. 2020

애들아, 미안하다

 1.


석유자본을 중심으로 발달한 댈러스는 영혼이 없는 도시입니다. 예를 들어 크기는 작지만 곳곳에 사람 사는 애환이 흥건한 뉴올리언스 같은 곳과 비교해보면, 이 삭막한 지역은 시멘트 도시라 불러도 할 말이 없습니다. 텍사스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 도시 휴스턴에 비해서도 완연 활력이 없어보이구요.


도심에는 대형빌딩들만 우후죽순일 뿐이고 케네디 유적지 외에는 별다른 관광지조차 없습니다. 그렇게 빌딩 숲 낯선 속소에서 눈을 붙이고 내일 아침 기차를 탈 수밖에 없게 된 순간, K교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댈러스와 바로 붙은 도시 포트워스(Fort Worth)의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시는 K교수님은 오래 된 페이스북 친구. 2013년 가을 부산에서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렸을 때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반나절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대가 컸지요. 


제가 오스틴으로 연구년 갈 거라니까 꼭 연락하라 하더군요. 몇 시간 전에 텍사스이글 기차가 포트워스를 경유할 때 전화를 드린 이유가 그 때문이었어요.


너무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십니다. 중고차 사러 댈러스에 왔다 하니 마침 잘 되었답니다. 저녁에 학교에서 더 리얼그룹(The Real Group)이란 이름의 스웨덴 가수들 아카펠라 공연이 있다는 거예요. 구입한 중고차 몰고 와서 구경하고 오스틴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씀. 댈러스와 포츠워스는 지척이랍니다. 


더 리얼그룹은 처음 들어봤는데 알고 보니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 혼성 5인조 그룹이더군요. 현존하는 최고의 아카펠라 그룹으로 우리나라도 여러번 찾아와서 공연을 했다 합니다(그림 1). 




찾아뵙겠다 약속은 했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니 제 발로는 찾아갈 도리가 없군요. 호텔 잡기 직전에 이런 사정을 전화 드렸더니 일단 포트워스로 건너오랍니다. 마침 자기 연구실의 박사과정 조교가 댈러스에 직장이 있으니 오는 길에 픽업을 부탁하면 된다고.


그렇게 텍사스 시골마을 출신이라는 헌헌장부를 만났습니다. 이 청년은 의대를 다니다가 신학 전공하러 대학을 옮긴 독특한 이력을 지녔더군요. 


큰 키에  등이 꼿꼿하고 마음도 곧은 청년이었습니다. 부업으로 피트니스 트레이너 일을 병행한다 합니다. 체격이 저리 좋은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거지요. 어쨌든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소형 픽업트럭에 오릅니다. 노을녁의 텍사스 벌판을 씽씽 가로지릅니다.


저녁 어스름에 도착한 TCU. 교내 극장에서 열린 공연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수준급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표를 판매한 본격 공연이었어요(사진 2).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테이블을 놓고 입장권을 팝니다. 상상 이상으로 입장권이 비싸네요. 아이쿠, 이런 구경을 그냥 시켜주시다니!


딩딩딩~ 독특한 화음으로 시작하는 스마트폰 알람 굿모닝(Good Mornig)의 원작자로 알려진 더 리얼그룹.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로 구성된 이들은 왕년의 초인기 그룹 아바(Abba)를 연상케 하는 탁월한 노래와 춤 솜씨를 자랑했습니다. 


장면 장면이 다 좋았지만 특히 싸이의 ‘젠틀맨’을 패러디한 말춤 아카펠라가 최고였어요. 기교와 표현력에서 절정의 무대라 할만 했거든요. 홀 안의 관객 모두가 리듬에 맞춰 어깨춤을 동시에 들썩이는 진풍경을 상상해 보세요. 어두운 곳에서 폰카로 찍어 화질이 엉망이지만 분위기라도 한번 보시라고 말춤 장면을 올려봅니다.(사진 3)


근데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 보면서 졸음이 왜 이렇게 쏟아질까요. 텍사스 벌판에서 본 석유 시추기처럼 고개가 아래로 팍 떨어졌다 헉 다시 곧추 세우기를 스무 번은 넘게 반복합니다.


누가 멀리서 보면 "저 사람은 뭐가 맞다고 저렇게 고개를 끄덕거리나" 하겠네요.^^ 시차가 완전히 적응이 안 됐나 봅니다. 게다가 낮에 그렇게 떨면서 댈러스 바닥을 싸돌아다녔으니 공연장 열기에 몸이 확 풀려버린 거지요.




이렇게 저렇게 K교수님께 큰 신세를 졌습니다. 옆 집 할머니와 공연을 함께 보기로 약속하셨는데 불청객 탓에 약속을 미루셨다 하는군요. 굳이 호텔 갈 필요가 있냐며 자기 집으로 가자십니다. 2층 손님 침실을 내어주시더군요. 다음날 아침에는 김치국과 밥, 거기에 맛난 샐러드와 빵까지 구워주십니다. 오스틴 가서 먹으라고 흑미, 멕시코 좁쌀의 일종인 레드 퀴노아(red quinoa, 사진 4)




이 고마움을 어찌 갚을까요. 오스틴에 돌아와서 감사 전화를 드렸더니 이리 말씀하십니다. “저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받은 도움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중에 교수님도 다른 분께 다시 갚으시면 됩니다.”


타인에게 받은 호의를 다른 이에게 다시 되돌리는 것. 인류학자 타이거와 폭스(Tiger & Fox)는 이걸 보은의 망(Web of Indebtedness)라고 불렀지요. 두 사람은 이 본성이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짓고, 오늘날의 문명을 만든 기초석이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타인에게 받은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타인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 평생 잊지 말아야 할 화두를 이번에 배웁니다.


포트워스 발 오스틴 행 <텍사스이글>은 오후 2시 10분 출발(댈러스는 오전 11시였는데 오랜 시간 경유를 하는 건지 지척 간의 도시 사이에 시간 간격이 뜸하더군요). 시간이 남으니 아침 먹고 학교를 구경시켜주시겠답니다. 


1873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Texas Christian University가 풀 네임이지만 TCU란 통칭으로 더 많이 불립니다. 교명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상당히 큰 규모의 종합대학입니다. 2015년 기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대학랭킹에서 76위. 주립대 가운데 최정상급인 UT 오스틴이 53위인 것과 비교하면 수준이 꽤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가 오랜 학교답게 캠퍼스 곳곳에 자리 잡은 건물들이 아름답고 정연하군요. 모든 건물이 100여 년 전부터 일관된 건축디자인 기준을 준수하고 있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지상고에 하나같이 연한 크림색 벽돌로 설계되었습니다(사진 5).




건물을 돌아나오는데 윗통을 벗은 건장한 백인 남학생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서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날씨가 이렇게 차가운데! 아마도 운동장 트랙에서 달리기를 하려나 봅니다.


청년을 가리키면서 K교수님이 말합니다. 


"미국대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3가지랍니다. 첫째는 도서관, 둘째는 학생들 먹이는 것, 셋째는 운동시설이지요."


지식을 익히고 좋은 식사를 하고 몸을 튼튼히 하는 것. 어찌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것이 교육의 기초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인상적인 것은 학생회관 2층에 위치한 식당. 이후 수많은 대학에서 본 비슷한 시설이지만 이 대학은 특히 식당이 크고 좋더군요. 대형 카페테리아는 수백 명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만큼 규모가 큽니다. 학생이나 교직원은 5달러, 외부인은 9달러.


요일마다 바뀌는 메뉴가 백여 가지에 가깝군요. 닭고기와 칠면조와 소고기 요리.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종류별로 진열대에 가득하군요. 과일을 골라 가면 스무디(smoothie)를 만들어주고 면 요리와 볶음요리 재료를 선택하면 불판 위에서 즉석요리를 해 줍니다. 심지어 채식주의자 전용 메뉴까지 마련되어 있군요.


시간이 촉박해서 도서관과 체육시설은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식당 규모와 시스템을 미루어 그 내실이 충분히 짐작됩니다.


3.


안식년 가기 전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 나라가 딱히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은 귀국한 지금도 변함이 없구요. 하지만 이 나라와 우리가 흑과 백처럼 대조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대학입니다. 사회가 대학에 기대하는 역할이 다르고, 역으로 대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분명히 기울어가는 나라입니다. 늦어도 2030년이 되면 국민총생산에서 중국과 순위바꿈이 이뤄질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니까요.  IT 기업과 SNS 중심 스마트 산업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와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도 경제 하락 추세는 반전이 없습니다. 


중국 자본의 진출도 정도 차이는 있을 뿐 여전하구요. 예를 들어 제가 있을 때 일어난 레노버가 모토롤라를 인수합병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조립PC나 팔던 중국의 신생 전자회사가 모바일의 공룡을 집어삼킨 거지요.


2015년부터 베이징시가 100명의 억만장자를 보유함으로써 뉴욕(95명)을 제치고 세계에서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도시로 등극했다는 뉴스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니 코로나 팬더믹과 이에 따른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가 격화되고, 미국의 경제고립주의가 심화되어도 이런 추세는 역전이 불가능하다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대학이란 영역만 놓고 봤을 때는 전혀 사정이 다릅니다. 하버드대학이 최초로 세워진 것이 1626년.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북동부 대서양 해변에 도착한 것이 1620년이니 고작 6년 만에 대학을 설립한 겁니다.


대학의 존재 가치와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짐작케 하는 사례입니다. 그 후 400년 동안 대학은 경제, 과학, 문화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책임지는 산실이 되어왔지요.


규모와 명성, 학문 수준, 연구 실적 등에서 명실공히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넘버원. 나라 전체가 대학 시스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특급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니 당연한 일일까요. 사립, 주립, 국공립을 막론하고 대학에 투자하는 천문학적 비용은 접어두지요. 넘볼 수 없이 확고부동한 것은 대학 설립, 운영, 교육 내용의 원천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범사회적 합의입니다.


교환교수로 온 텍사스 주립대학, 제가 사는 도시의 UT 오스틴에 이어 세 번째로 살펴보는 캠퍼스입니다. 하지만 반나절 구경만으로도 지난 1세기 동안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한 이 나라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선명하게 눈치 채게 되는 겁니다.


4.


우리는 어떤가요? 국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재정지원을 무기로 관료집단이 대학을 손아귀 안 공기돌처럼 주무른 지 수 십년이 넘었습니다. 지방의 경우 기득권 커넥션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사학재단의 전횡이 적폐 중의 적폐입니다. 


그러한 관치와 토호세력의 위세를 넘어 이제는 삼성과 두산을 필두로 하는 자본이 직접 대학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예외없이 존재 이유 자체를 자본의 논리로 대체한지 오래입니다. 취업과 생존을 미끼로 얄팍한 돈의 정신을 아이들 머리에 반강제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거지요.


미국 대학이라고 어디 문제가 없을까요. 1980년대 레이거니즘 등장 이후 신자유주의적 기업논리가 캠퍼스를 완전히 잠식했지요. 과도한 등록금과 교육비 대출이 학생들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은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하지만 늘 그렇듯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겁니다. 대학을 대학이도록 만드는 최소한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나라와 그러한 방어막이 완전히 무너진 나라. 이 둘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여도 본질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 차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부 최고의 명문대로 손꼽히는 스탠포드 대학의 경우 교양학부에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 과목이 200개 이상 개설되어있어요. 대학교육의 가치를 당장 손익계산을 넘어선 긴 안목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순수학문 연구를 통한 사회공헌의 최후 보루가 대학이라는 합의가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는 거지요.


거시적 관점에서 기초학문의 유지와 발전이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사회적 합의와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1년 동안 미국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늘 그리고 저절로 한국 생각이 났지요. 문사철의 퇴조는 이미 거대한 쓰나미가 되었습니다. 고유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국어국문학과가 속속 문을 닫고 있지 않습니까. 강의의 주요 부분을 맡았던 외래강사들이 대거 퇴출됨에 따라, 국내 대학원 중심의 학문공동체가 완연히 시들어가고 있구요.


그를 대신하여 현금출납부 작성과 부기과목을 교양필수로 집어넣겠다는 천박한 장사꾼 발상이 기어이 대학을 휩쓸고 있습니다. 정부와 대학재단 모두 돈독이 오른 겁니다. 국가 백년대계를 만드는 기초 학문과 인문학 육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겁니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졸속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능하고 천박한 교육권력과 눈 앞 돈벌이에 급급한 자본이 대학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겁니다. 그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요? 두려움을 넘어 무력감이 들 정도입니다.


캠퍼스 곳곳을 살피는 제 마음 속에는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출렁입니다. 놀랄만한 장서량과 편의시설을 자랑하는 도서관. 웃통 벗고 캠퍼스를 뛰어다니고, 드넓은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땀 흘리는 아이들. 학생식당의 풍성한 메뉴를 여유 있게 즐기는 학생들을 보며 내 머리에 떠오르는 건, 지금도 맹맹한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있을 제자들입니다. 도서관은 그저 시험 때 자리잡기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불과한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 말이지요.


스펙 광풍에 내몰려 소용될 곳도 없는 몇백 점 토익점수와 자격증에 목을 매는 아이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양떼처럼 “생존의 채찍”에 휘둘리며 20대의 빛나는 시기를 정신없이 통과하고 있는 제자들. 그래도 선생이라고 믿고 따르는 그들에게 저는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댈러스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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