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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20. 2020

훌렁훌렁 가슴 보여주는 여자들

1.


축제(festival). 이 단어는 한국 사람들에게 참 낯섭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뜻 그대로 제대로 된 축제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지요.


이런 명칭이 붙는 경우는 대개 지역에 한정된 관(官) 주도 행사 혹은 상업적 이벤트입니다. 마음의 끈을 풀어제치고 화끈하게 참여해서 즐기는 행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국어사전에서 '축제'를 찾아봤더니 “개인이나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결속력을 주는 사건 혹은 시기를 기념하여 의식을 행하는 행위.” 이렇게 풀이되어 있네요.


서가에 있는 '문학비평용어사전'을 뒤적거려 봅니다. 여기에는 축제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사회적 통합을 위해 작동하고 기능하는 일종의 종교적 이벤트”라는 겁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체제유지적 기능입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이 한 말이군요.


두 번째는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것. “공격성과 즉흥성, 디오니소스적인 부정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적 이벤트”라는 멋진 정의군요.


사회적 가치, 양심, 이상 어쩌고 하는 수퍼에고(super ego)의 갑옷을 벗본능적 이드(id)의 세계로 일탈하는 순간이 축제라는 말입니다. 역시 정신분석학의 원조답군요.


저는 두 번째 정의에 동의합니다. 억눌렸던 사회적 금기를 깨는 해방감. 이런 폭발적 발산이 있어야 비로소 축제의 입구에 들어서는 거라 생각하니까요.  


가슴 깊이 숨겼던 놀이 본능, 손대면 화르륵 탈 것 같은 욕망을 대중환시리에 맘껏 드러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순간 말이지요. 그리고는 시침 뚝 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환이야말로 얼마나 멋집니까 그래.


2.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이 대표적 사례지요. 카톨릭 금욕주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열리는 이 축제는 한마디로 ‘삼바 퍼레이드’로 대표됩니다. 반나체의 비키니와 화려한 깃털 장식으로 치장한 무용수들이 삼바 춤을 추며 하루 종일 거리를 행진하는 행사(사진 1).




 뜨거운 공연을 구경할 수 있도록  특별히 꾸민 거리를 ‘삼바드로모’라 부른다더군요. 동시에 6만 명 이상이 길가에 나와서 삼바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함께 몸을 흔듭니다.


리오데자네이루의 서민들은 리오 카니발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는 말도 있더라구요.  춤과 노래와 광란이 뒤엉킨 나흘간의 카니발을 위해, 꼬박 1년을 준비하고 퍼레이드 시작만을 목놓아 기다린다는 거지요.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우리와는 다릅니다. ‘삿포로 눈축제’ 같은 세계적 이벤트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특유의 관계 중심 사회분위기 탓에 서구보다 폭발적 분위기는 덜합니다. 그렇지만 마을마다 도시마다 연중 끊이지 않고 제대로 된 축제가 열립니다. 바로 마쯔리(祭り)지요.


일본 3대 마쯔리라 불리는 것이 토쿄의 칸다마쯔리(神田祭), 오사카의 텐진마쯔리(天神祭) 그리고 쿄토의 기온마쯔리(祇園祭)입니다. 저는 다른 건 못 보고 쿄토 기온마쯔리는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서기 869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축제는 7월 중순 찌는 듯한 한여름 밤에 시작됩니다.


기온마쯔리에서는 야마보코(山ぼこ·山鉾) 행진이 절정입니다. 창과 칼과 깃발을 꽂아 화려하게 장식한 큰 수레인데, 쿄토의 각 마을마다 만듭니다. 제일 큰 건 높이가 무려 24미터나 된답니다.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면 사오십명 이상의 청장년들이 함성을 지르며 수레를 끄는데 그 장면이 가히 장관입니다.


밤이 되면 32개나 되는 야마보코마다 등을 내거는데, 이 광경을 구경하러 나오는 사람들로 말 그대로 쿄토 중심가는 발을 딛기 힘들 정도로 가득찹니다(사진 2).




제가 구경간 2012년의 경우 쿄토 전체 인구가 140만명 정도 되는데 (외지 관광객을 포함해서) 그 하룻밤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 숫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하더군요. 압도적인 참여 열기였지요.


이렇게 보자면 빈도로나 질적 수준에 있어 한국만큼 축제가 없는 나라가 없다는 자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사회적, 심리적 억압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반면에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공동체적 탈출구가 일체 봉쇄되어 있는 거지요.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상태를 항구적으로 견디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화병(미국 정신의학협회 진단 및 통계 편람 DSM-4를 보면 한국인 특유의 증후군으로, 우리말을 그대로 써서 ‘hwa-byung’ 이라 등재해놓았을 정도지요)이 많은 게 이 때문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풀기 위한 술자리가 그렇게 빈번한 까닭 또한 그것이구요.


수증기로 꽉 찬 주전자 같다고 할까요. 생존을 위한 고투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긴장은 일상화되어 있지만, 그것을 발산하고 해소하기는 힘든 사회. 한국이라는 사회의 구조적 폐쇄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축제의 부재(不在) 현상인 셈입니다.


앗, 글이 옆길로 샜군요. 다시 본론으로. ^^


3.


미국 오기 전에 꼭 가 보고 싶은 축제가 있었답니다. 바로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마디그라(Mardi Gras) 축제. 해마다 2월 말부터 약 일주일에 걸쳐 열리는 마디그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페스티발이자 (혹자에 따라서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불립니다.


제가 이 축제에 급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축제 기간에 여자들이 옷을 훌렁훌렁 벗고 막 가슴을 드러낸 채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그래서 갔습니다. 그리고 봤습니다.


오스틴에서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까지는 시속 100킬로미터 정속주행으로 8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그 멀고도 험한 길을 사뿐히 즈려밟고 달려갔습니다. 구입한지 열흘도 안된 중고 싼타페를 끌고 마디그라를 구경하러.


추신 : 사기꾼 딜러 후일담이 궁금하시단 분들이 계십니다. 더 이상 깊은 스토리는 없구요. 다만 댈러스에서 돌아온 며칠 후 뜬금없는 전화가 왔어요. 이 친구 엄청 들뜬 목소리로 하는 말이 “핸들이 떨리는 이유를 찾았어요!“


조금 모자라는 인간인가요, 아니면 정말 세계적인 사기꾼일까요? 폐차 직전의 차를 시침 뚝 떼고 팔려했던 자가 뒤늦게 자기 차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니. 그것이 그리도 기쁜 일이라니.


이제 와서 날 더러 어쩌라는 거니? 조금 황당해서 ”예 알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고 후다닥 끊어버렸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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