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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O May 14. 2020

“불안함”이라고 느끼고 “틱”이라고 읽는다.

아이의 사회생활

신도시의 나무들도 무성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일이다.

 

신도시의 아파트는 흥미로움의 연속이다. 새로 하나씩 올라가는 건물을 보는 것도, 새로운 가게가 하나씩 들어오는 것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된다. 새로 생기는 것은 가게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중학교를 포함해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학교가 개교할 때마다 근처 아파트의 학부모들은 비상에 걸리게 된다. 비단 이 모든 것이 어른들의 문제뿐이겠는가. 계속 다니던 학교나 유치원을 옮겨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임이 틀림없다.


 내 아이의 “불안함” 이 “틱”이라는 증상으로 발현된 것은 새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난 후, 주변에 어린이집이 없어 40분 거리의 기존 어린이집으로 등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바뀐 집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4살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기 시작하며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가지 않겠다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던 아이를 보고 엄하고 단호하게 가야 한다고만 몰아붙였고, 어르고 달래고 화도내고 혼을 내서 결국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면 돌아오는 선생님의 말.


“ 처음엔 울었지만 금방 그치고 아주 잘~ 놀았어요.”


그냥 가기 싫어서 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기고 말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아이에게서 이상한 행동이 나타났다. 이따금씩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더니 점점 심해져 눈알을 계속 우상, 좌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동 틱입니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을 수 있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됩니다. 1~2주 정도 지켜보시고 호전이 없으면 심리 상담을 받아보세요.”


 의사의 말을 듣고 아이와 집에 오는 자동차 운전석에서 아이가 듣지 못하게 숨 죽이며 펑펑 울었다.  아이의 틱 행동을 지적하거나 관찰하지 말고 모른 척하라는 말에 그러려고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뛰어다니며 좋다고 웃고 있는 모습에 또다시 울음이 터졌다.


“ 당분간 어린이집 가지 말고 엄마랑 놀 거야. 엄마도 공부 안 할 거야. 계속 엄마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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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기업 증권사에 다니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한 살 연하이자 대학 후배인 남편과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도 ‘잘 나가는 선배’, ‘돈 잘 버는 누나’로 항상 멋진 생활을 이어가던 나에게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아들인 남편과 연인으로의 발전은 같은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들에게 축하와 동시에 걱정을 받게 되었다.


 각설하고 그런 남편과의 사이에서 결혼하고 1년쯤 지나 계획하여 가진 아이 었다.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 직장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에 남편과 상의하여 그만두었고,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산 후, 나는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떳떳하고 당당하던 내 젊은 날의 모습은 없어지고 낮인지 밤인지 모를, 언제든 아이가 울면 아이의 도시락(?)이 되어 주어야 하는 반복되는 일상과 잠투정이 심해 밤잠을 자려면 5시간을 내리 울어대야 하는 아이를 키우며 맨 정신일 수가 없게 되었다.


“ 어린이집에 보내야겠어. 이렇게 계속 지내다간 내가 아기를 미워하게 될 것 같아.”


18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남편과 상의하고 적응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다시 한국어 강사가 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이어나갔다.


살 것 같았다.

내가 나의 인생을 살고 있음을 느끼고,

그런 생활이 아이와의 생활에서도 활력이 되었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쳤을까.

언젠가부터 아이를 보고 남은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먼저이고 남는 시간에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청약받아놓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아이에겐 모든 것이 낯설게, 불안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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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에게 집중한 결과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틱 증상이 없어졌다.


“ 한번 발현된 틱은 언제든지 또 나타날 수 있고 진화된 형태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을 늘 기억하며 지냈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최강 약자가 되었다.

불안함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감은 아이에게 훈육할 기회조차 두려움의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1년...

 

아이는 잘 지냈다,

그러다  집 앞에 새로운 초등학교가 생기면서 단설 유치원이 들아왔다. 걸어서 등원이 가능한 유치원으로 등원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개학이 늦어지고 늦어지고 또 늦어지고.., 그러다 도저히 맞벌이 부부인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워 긴급 돌봄을 신청하게 되었다.

 약 5개월 만에 유치원에 보내게 되었다.


“유치원에 빨리 가고 싶어.”


말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다시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역시나 다시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까딱이는 증상까지 같이 나타났다.


강해져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아이를 사랑하자.


역시나 당황스럽고 걱정되고 안쓰럽지만 나는 오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에게 사랑과 신뢰 가득한 말로 안심시키고 달래 본다.


아이야,

엄마도 강해질게.

부디 “불안함”에 지지 마렴.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엄마가 달려갈게.


심리 상담을 받아볼 생각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든것을 내 탓으로 돌려 숨쉬기가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강해지자.

커 가는 과정이리라.


괜찮니?

아가.

너의 마음... 괜찮은거니?


사랑한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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