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10년전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12~3년 전 겨울, K금융그룹 고등학교 동문 모임이 있었다. 서울 마포의 역전회관. 40~50대 선배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당시 30대 중반이었고, 그 모임 참석자 중 막내였고, 퇴직은 아직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두 분의 선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둘 다 50대 중후반으로, 퇴직한 지 몇 년 되신 분들이었다.
A선배는 K금융그룹에서 부행장까지 오른 분이었다. 회사의 2인자. 수천 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렸고, 임원회의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계셨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언젠가 행장이나 회장까지 가실 분"이라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그분은 후배들을 많이 챙기셨다. 승진에 도움을 주시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서서 해결해주셨다. 한편으로는 성과에 지독한 가혹하고 잔인한 면도 있다는 얘기도 듣는 분이셨다.
B선배는 PB센터장급으로 퇴직하신 분이었다. 지점장 승진을 크게 바라지도 않았지만 운좋게 마지막 3년은 지점장급인 센터장으로 퇴직한 평범한 커리어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승진도 없었고, 그렇다고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30년을 채우고 나오신 분. 우리 같은 후배들은 B선배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그분은 항상 유쾌하시고 즐겁고, 자리에서 대화를 주도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누군가 A선배에게 물었다.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부행장까지 하신 분이니, 당연히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나 자문역을 맡고 계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A선배는 잠시 멈칫하시더니, 쓸쓸하게 웃으셨다.
"집에만 있지. 할 게 없어."
순간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퇴직하고 나니까 조용하더라고.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전화가 왔는데... 지금은 가끔 후배들이 연락은 오는데, 밥 한번 먹자는 거지. 일 얘기는 안 해."
A선배는 계속 말씀하셨다.
"30년을 회사만 보고 달렸어. 부행장까지 올라가는 게 목표였거든. 그래서 주말에도 회사 나가고, 저녁에도 회식하고, 골프도 다 업무 관계로만 쳤어.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남은 게 없더라고."
재테크는 하셨냐고 누군가 물었다.
"퇴직금 받았는데, 그걸로 뭘 하겠어. 연금이랑 합쳐서 그냥 조용히 사는 거지."
A선배의 목소리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30년을 올인해서 부행장까지 올랐지만, 퇴직 후에는 할 일도, 갈 곳도,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회사라는 무대에서 내려온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반면 B선배는 달랐다.
"저는 요즘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어요."
B선배는 밝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조금 놀랐다. 팀장급으로 퇴직하신 분이 대학 강의를?
"10년 전부터 준비했어요. 40대 중반부터요. 회사만 보고 살면 안 된다는 걸 일찍 깨달았거든요."
B선배는 퇴직 10년 전부터 외부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엔 청강만 했는데, 나중에는 대학원 과정도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쪽 사람들과 인연이 생겼고, 퇴직 후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상가도 몇 개 투자했어요. 회사 다닐 때 부동산 공부를 했거든요. 월세가 나오니까 생활비는 걱정없어요."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강의도 하고, 상가 관리도 하고... 회사 다닐 때보다 시간은 자유롭고, 수입은 비슷해요. 무엇보다 즐거워요. 회사 다닐 때는 의무감으로 일했다면, 지금은 하고 싶어서 하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계속 두 분을 생각했다.
회사에서 더 높이 올라간 사람이, 퇴직 후에는 더 외롭고 고독했다. 반대로 평범하게 퇴직한 사람이, 더 즐겁고 행복했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준비"였다.
A선배는 회사에 올인했다. 승진이 인생의 목표였고, 회사가 인생의 전부였다. 그래서 퇴직 후를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B선배는 일찍 깨달았다. "회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40대 중반부터 조금씩 준비했다. 외부 활동, 부동산 공부, 네트워크 구축... 10년 동안 천천히, 꾸준히 준비했다.
그날 밤 나는 다짐했다.
"나는 B선배처럼 살고 싶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나는 4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고, 퇴직이 이제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현실로 다가왔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가고 싶은 자리가 없었고, 만약에 회사에 남아있다면 새로운 도전보다는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20년 넘게 컨설팅과 사업을 해온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그 친구는 대학원 졸업 후 주니어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독립했고, 이후 여러 중소기업에 투자도 하고 자문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친구, 나 퇴직 생각하고 있어."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친구는 잠시 술잔을 내려놓고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Jason, 솔직히 말해도 돼?"
"그래, 말해봐."
"퇴직하면 뭐 할 건데?"
나는 대답을 못했다. 사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막연하게 "뭐라도 하겠지" 정도였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이야?"
"40대 이전에는 스펙이 중요해. 학벌, 자격증, 경력... 이런 걸로 평가받잖아. 그런데 40대가 넘어가면, 이제 '네가 누구를 아는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거지. 누가 너한테 일을 맡길 것인가? 누가 너를 필요로 할 것인가? 그건 결국 네트워크에서 나와."
친구는 소주를 한 잔 마시고 계속했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본인 네트워크의 가치를 모르고, 정리도 못 해. 왜 그런지 알아? 회사 명함으로만 일했으니까. 너도 지금 만나는 사람들 생각해봐. 그 사람들이 'K금융그룹 팀장'을 만나는 거야, 'Jason'을 만나는 거야?"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23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스타트업 대표들, 투자자들, 정부 기관 사람들, 대학 교수들... 내 명함에는 수백 명의 연락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아는 걸까? 아니면 'K금융그룹'을 아는 걸까?
명함을 떼면, 나는 누구인가?
그날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퇴직까지 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나는 크게 세 가지를 준비했다.
퇴직 후에도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자격증이 필요했다.
23년 경력이 있어도, 명함 떼면 그냥 "전직 회사원"일 뿐이다.
경영학박사 학위와 경영지도사 자격증 중에 고민했고, 좀 더 시간이 덜 걸릴 것 같은 경영지도사 자격증으로 목표를 정했다. 최소한의 준비이자 보험이라고 생각했다.
경영지도사는 국가공인 자격증이다. 이게 있으면 정부 프로그램 멘토로 활동할 수 있고, 컨설팅 일감을 받을 수 있다.
1년간 밤마다 공부했다. 회사 일 마치고 집에 와서 새벽 1시까지. 주말에는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했다. 40대가 넘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눈은 침침하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외우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1년 후, 합격했다.
그때 생각했다. "아, 이제 최소한의 준비는 됐구나."
자격증은 취득했는데, 그게 진짜 돈이 될까?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활용해서 돈을 벌어보라고 말했다.
몇몇 투자사 대표가 내게 개인투자조합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다.
내가 FUTURE9을 8년간 운영하면서 쌓은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맡길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나를 신뢰할까?
결과는 놀라웠다. 2년간 5개의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했고, 약 25억원을 모았다.
물론 회사 명함이 있을 때였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내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었다.
"아, 나는 퇴직해도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이 확신이 생기자, 퇴직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세 번째였다.
퇴직 2년 전부터,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사람들을 만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스타트업 대표, 투자자, 멘토, 교수, 정부 기관 사람들...
왜 그랬냐고?
명함값과 진짜 인맥의 옥석을 가리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팀장님"이라고 부르며 명함에 관심을 보였다. 회사 이야기만 물어봤다. "K금융그룹에서 FUTURE9 어떻게 운영하세요?" "저희 스타트업도 FUTURE9에 선발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달랐다. "Jason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Jason은 요즘 뭐에 관심 있으세요?" 그들은 직함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관심을 보였다.
전자는 명함값이었고, 후자는 진짜 인맥이었다.
2년 동안 수백 명을 만나면서, 나는 진짜 인맥 100명을 추렸다. 명함을 떼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최소한 1~2번은 응답해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이 100명이 퇴직 후 내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2년을 준비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의 퇴직자들보다는 훨씬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직 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이것들도 미리 준비했어야 했구나."
나는 23년 경력이 있었다. 디지털금융, 전략, 데이터, 오픈이노베이션, 투자...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그런데 퇴직 직후, 사람들이 물어봤다.
"Jason은 뭘 잘하세요?"
나는 대답을 못했다. "음... 여러 가지요?" 이런 애매한 대답만 했다.
사실 나도 몰랐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퇴직 후 1년이 지나서야,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 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걸 잘하는구나.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시너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구나."
고고팩토리와 디오랩스를 연결했을 때, 씨드앤과 SK네트웍스서비스를 연결했을 때...
그때마다 나는 즐거웠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돈을 떠나서, 그 일 자체가 즐거웠다.
만약 퇴직 전에 이걸 알았다면?
더 빨리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더 확신을 갖고 나왔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40대 중반에 강점 분석을 체계적으로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30대까지는 괜찮았다. 밤샘 업무도 하고, 주말 출근도 하고, 술자리도 많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40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젊어" 하면서 무리했다.
그런데 퇴직 후,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새벽까지 컨설팅 보고서 등을 쓰고 나면 다음 날 하루 종일 피곤했다. 지방 출장 다녀오면 2~3일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술 한 잔만 마셔도 다음 날 머리가 아팠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이제 50대가 다 됐구나."
주변 퇴직 선배들을 보니 더 심각했다. 어떤 분은 당뇨가 왔고, 어떤 분은 고혈압 약을 먹고 있었다. 어떤 분은 무릎이 안 좋아서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만약 40대부터 꾸준히 운동했다면? 퇴직 후 10년, 20년을 더 건강하게, 더 활발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시작하려고 한다. 아침마다 산책하고, 주 3회 헬스장 가고, 술은 줄이고. 하지만 솔직히 40대에 시작했으면 훨씬 쉬웠을 것 같다. 몸이 전부다. 몸이 안좋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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