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7. 나는 연결을 좋아하는 사람

공짜로 착취당한 일의 공통점을 찾아라

by 박원규

2024년 11월 어느 날, 대구 가는 기차 안.

창밖을 보며 PPT를 넘기고 있었다.

DGIST 강연 준비. "오픈이노베이션 성공 사례" 발표.

슬라이드를 넘기다가 손이 멈췄다.

FUTURE9. 7년간 3,800개 스타트업. 79개 기업 선발.

5년 연속 국내 프로그램 1위.

민간기업 최초 중기부 장관상. 600억원 투자.

이 숫자들이 명함에 적힌 이유였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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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


기차는 대구로 달리고 있었다. 강연 자료를 보는데 자꾸만 딴생각이 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다니던 조그만 교회(20~30명)에 친구들이 오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자 같은 반 절반, 25명이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 친구들과 원래 교회에 있던 친구들이 서로 친해지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행복했다. 회사 생활 중반, 단골 남대문 안경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추천했다."사람들 좀 소개해줄 수 있어?" 2년여 만에 50명 정도의 내 주변 지인이 해당 안경점을 다녀갔다.


회사 생활 내내 모임 총무를 많이 했다. 동문회, 부서 모임, 동기 모임 등. 타의에 의해 떠맡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장소는 어디로 잡을지, 일정은 어떻게 짤지, 누구를 어디 자리에 앉힐지. 정교하고 디테일하게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신기했다. 행사 당일,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대화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사라졌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사람들이 만나서 행복해하는 그 순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친구들 결혼도 10커플 정도 중개했다. 둘의 성향을 파악하고, 어떤 대화 주제가 좋을지, 어디서 만나면 편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9년 전부터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면서 취업 중개를 10건 넘게 했다. 스타트업은 좋은 인재가 필요했고, 이 스타트업과 맞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스타트업과는 잘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양쪽의 니즈를 파악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회사에 맞을지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팀장님 덕분에 좋은 기회 얻었습니다."


그 연락을 받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스타트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한다.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한다. 그냥 연결하는 게 아니다. 어떤 회사가 어떤 회사와 만나야 시너지가 날지, 그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연결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정하고, 완성도 있게 준비한다.


그 순간 기차 안에서 나는 깨달았다.


40년 동안 나는 계속 같은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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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교회를, 회사 생활 중엔 안경점과 고객을 연결했다. 결혼 중개도, 취업 중개도 그랬다. 스타트업과 인재를 그냥 연결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떤 회사에 맞을지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지금 오픈이노베이션도 똑같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그냥 소개하는 게 아니다. 어떤 조합이 시너지를 낼지 파악하고, 그 연결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정한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았다.


나는 단순히 '연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그 연결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연결을 통해 양쪽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가장 행복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 소개받은 커플이 결혼했다는 소식,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협업에 성공했다는 연락.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DGIST 강연장에 도착했다. 학생들 앞에 섰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학생들에게 물었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답은 이제 명확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사람과 사람을, 회사와 회사를 엮어왔다. 그런데 그냥 엮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그 연결이 의미 있을지 고민했고, 그 과정을 정교하게 기획하고 조정했다.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양쪽 모두가 행복해하는 순간, 나는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그게 내 본성이었다.

회사를 떠나도 상관없었다. 명함이 사라져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본성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니어도, 직함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이 일을 할 수 있다. 아니, 하고 싶다.


회사에서도 계속 같은 일


돌이켜보니 회사 생활 23년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은행 전략기획팀에서 일할 때, 나는 항상 부서와 부서 사이에 있었다. "전략팀에서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재무팀 검토 좀 부탁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전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전략팀의 의도를 재무팀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했고, 재무팀의 우려사항을 전략팀에 다시 전달하며 조정했다. 양쪽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나는 중간에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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