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 서점 '관객의 취향' 영화모임,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퇴사를 결정하고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고립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퇴사를 했다지만, 인간관계도 넓지 않고 활동적이지도 않은 내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스스로 동굴을 만들어 숨어버릴 것 만 같았다. 회사는 나에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평범한 인간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가느다란 끈이었고, 새로운 정보를 경험하게 하는 기회였고, 나를 억지로라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이유였다. 이런 이유로 퇴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고립되는 건 싫었다. 퇴사를 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수동적으로라도 스스로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다. 그때 마침 운명처럼 나타난 모임이 바로 ‘영화가 끝나고 난 뒤’였다.
평소에도 독립책방에서 하는 모임이나 이벤트들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에 집에서 가까운 관악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관객의 취향’은 관악구에 있는 독립 책방으로 평소에 책방에서 관심 있게 진행했던 모임이 있어 포스팅 알림을 해둔 참이었다. 내가 원했던 모임은 아니었지만, 전에 했던 영화모임의 기대감으로 모임을 신청했다. 그리고 또한 가지,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 편식이 심한 편인 나는 이번 기회로 스스로는 선택하지 못할 새로운 영화들이 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그다음 주 목요일을 시작으로 4주간의 영화모임이 진행되었다.
모임의 규칙은 각자 영화를 보고 난 뒤 매주 목요일에 모여 7시 반에서 9시 반까지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첫 영화를 제외하고 나머지 영화는 각자의 추천작 중에서 결정되었다. 모임의 첫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다. 이런 영화 모임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너무 오랜만이었고, 모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설렘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모임이 시작되자마자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들 너무나 진지했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평이라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느끼는 바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자리에 모인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평가는 전문인은 아니기 때문에 대화의 깊이에 대해서 논하긴 어렵다. 하지만 영화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특정한 하나의 영화에 대해서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영화가 더 이상 한 번 보고 잊어버리는 휘발성 또는 일회성이 아니어서 좋았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보아주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나쁜 영화는 없다는 내 나름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이 모임이 너무 감사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
전고은 감독의 소공녀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다가오는 것들
영화 속에 담긴 내용을 떠나서 다른 어떤 영화보다 이 네 편의 영화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