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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Jun 15. 2022

DAY 1

떠나고 싶었다.

떠나기로 결심한 건 2008년, 4학년 1학기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학교 게시판에 뉴욕 프로그램이라는 공지가 떴다. 여름 계절학기 동안 뉴욕에서 수업을 들으며 두 과목을 이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거다! 지금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2년간 다른 공부를 하다 건축으로 전공을 바꿨다. 교육과정이 5년제로 변경되어 남은 3년만 다니면 되는 줄 알았는데, 웬걸. 매 학기마다 들어야 되는 전공수업 때문에 도로 1학년부터 다녀야 했다. 벌써 내리 6년째, 남들은 이미 졸업하고도 남을 시간까지 나는 여전히 학교였다. 답답했다. 그 누구도 가둬두지 않는데도 어디에도 갈 수 없어서.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남들은 앞서 나가는데 나만 아직도 학교에, 늘 제자리인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다. 이런저런 핑계로 하고 싶은 일을 미뤄왔던 나, 모든 일에 충분히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 늘 시간에 쫓기며 여유가 없었던 나. 열심히만 외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열심히 했던 걸까 생각했다. 더는 이렇게 남은 1년 반의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조금의 유예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래도 생각 없이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학교 수업과 어학연수라는 명목 혹은 핑계로, 조금은 죄책감을 덜면서.


그렇게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2개월은 뉴욕에서 계절학기를 듣고, 남은 10개월은 영어공부를 하며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사는 이모집에 머물기로 했다. 졸업을 1년 반 남겨두고 그렇게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지금 보다는 나는 영어실력을 기대하며,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

*10개월간 미국에 머물렀던 시간을 30일간의 여행일기로 풀어보려고 해요. 올해 독립출판을 목표로요. 사진 에세이로 만들 예정이라 브런치 글에서 한계는 있겠지만, 꾸준히 글을 써서 사진과 함께 공유해볼게요. 읽으면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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