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마음으로
선생님 뭐가 잘못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저를 만나러 오시는 분들의 첫 말씀입니다.
이제껏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인생의 고비를 맞아보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잘 모르겠다’였다고 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고요. 자신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부터 쏟아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이고 뭐가 문제인지 찾아달라는 것이죠. 분명히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 와보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뿐이라는 겁니다. 허무함만 남았다고요.
무엇이 이분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걸까요?
위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싶으실 겁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열심히 삽니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어떤 것을 위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죠. 저는 이분들에게 한결같이 물어봅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도 이렇게 ‘열심히’ 해보신 적이 있는지 하고 말이죠. 이제껏 부모님, 친구들, 주위의 인정, 아이와 가족, 사회적인 요구, 자신의 직업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던 건 아니었는지 하고 말입니다. 보통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게 중요하죠.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하고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껏 나는 ‘나’를 위한 삶을 산 것인지 아니면 ‘나를 제외한 다른 것’을 위해서만 살았는지 하고요. 우리가 정성을 쏟고 관심을 가지며 전전긍긍해왔던 것들은 정작 ‘나’가 아니라 ‘나와 관계’된 것들이 더 많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게 된 거죠.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쏟아왔던 그 관계가 곧 자신이라고요. ‘진짜 나’를 보기보다는 자신 외 그 밖의 것에만 온 신경을 쓰고 산 셈인 겁니다. 그러니 어느 날 문득 공허한 자신을 볼 수밖에요. 지금까지 나는 무얼 했지 하고 말이죠.
중년기가 되면 이런 마음은 극에 달합니다. 그래도 젊은 날에는 노력한 만큼 성과도 있었고 공부나 직업적 성취도 나름 있었는데 이제 더는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가 없으니 허탈한 마음만 더 큰 겁니다. 실체가 없는 무언가에 매달리는 것처럼요.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엔 잘 알고 말고 하실 겁니다. 그럼 한번 적어보라고 얘기합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열 개 를 넘기기가 쉽지 않으실 겁니다. 그 열 개도 자신에 대한 세밀한 것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더 많이 기술되어 있을 겁니다. 자신이 뭘 할 때 행복하고, 어떤 때 슬프고, 어떤 순간이 기쁜지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은 오히려 찾기 어려우신 경우가 태반이죠. ‘타인이 보는 나’가 아니라 ‘진짜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지금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바로 이것입니다. ‘진짜 나’를 알기 위해 열정을 다해보는 거. 이제는 ‘열심히’에 대한 방향과 초점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할 때입니다. 헛된 것에 매달려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과 같은 건 멈춰야 할 때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지 못한 분들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막막하실 겁니다. 해보신 적이 없으실 테니까요. 일단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불을 지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호기심의 눈을 장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하나씩 부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죠.
자신에 대한 편견이 상당합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입맛을 들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절대 먹지 않았던 음식을 성인이 되어서 맛있게 먹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싫어했던 음식을 어떤 계기로 먹게 되면서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경우 말이죠. 언제 싫었더냐 하고 최애(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던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죠. 젊어서는 무채색 옷만 입었는데 어느 날부터 빨간색, 핑크색 옷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색상이 밝고 선명한 옷에 마음이 끌려서 한 개, 두 개 사기 시작한 경험 말이죠.
우리는 생각보다 취향, 패턴, 선호도, 하물며 성격까지 종종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그런데 인정을 안 하죠. “나는 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해.”, “나는 옛날부터 이런 거 싫어했어.” 하면서 말이죠. 해보지도 않고 딱 잘라 말합니다. 마치 자신에 대해선 궁금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되짚어보면 우리는 많은 것들이 시시때때로 바뀌었던 적이 더 많습니다.
어쩌다 본래 알고 있던 자신이 아닌 낯선 자신을 만나면 화들짝 놀라며 변명을 하기 급급합니다. “사실 난 원래 이런 거 안 했는데, 나이 들었나 봐. 이런 게 좋아지더라.”하고 말이죠.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서일까요? 많은 사람은 자신을 위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건 하면 안 되는 일처럼 말이죠.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 생각하는 건 이기적인 거라며 억울한 비난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매우 안타까운 겁니다. 자신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죄책감이 발동해서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니까요. 자신을 너무 홀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무엇보다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고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 공허한 마음의 뿌리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열심인 사람은 우울할 틈이 없습니다.
이제껏 주변을 충분히 돌보고 살피셨으니 이제는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경험이 될지 제가 보증합니다. 자신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하나씩 하나씩 알아간다면 평생 심심할 틈이 없다는 것을요. 자신을 착취하는 악덕 고용자 역할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나와의 소통 첫 단계입니다. 첫걸음을 한 번 떼어보세요. 이 글이 그 첫걸음의 용기로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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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호 <씨튼 가족> 간행물 - 通通한 이야기로 소통시리즈에 게재한 저의 글입니다.
이곳에도 공유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