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는 마음으로
“선생님, 우리 OO가 오지랖이 지나친 거 같아요.”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OO가 뭐든 잘하니까, 친구들이 잘 못하면 가서 막 해주나 봐요. 그래서 친구들이 많이 운대요. 그래서 제가 왜 그랬냐고 하면, 친구들 도와주려고 한 거래요. 그냥 친구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면서 유치원도 가기 싫다고 해요. 어쩌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상담할 때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대게는 친구들을 도와주려고 한 거였는데 친구가 막 울면서 자기 것을 빼앗겼다고 선생님에게 이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어떠시나요? 감이 오시나요?
아마도 위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아이는 뭐든지 잘 해내는 아이일 겁니다. 선생님의 말도 잘 듣고, 이해력도 좋고, 동작도 빨라서 유치원에서는 ‘똑똑한 아이’라는 대명사로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왜 그 아이를 싫어할까요? 친구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말없이 빼앗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건 도와주는 행동이 아니라 방해하는 행동이니까요. 친구들은 그 아이에 대해서 ‘자기만 아는 욕심꾸러기’, 또는 ‘나쁜 아이’라고 할 겁니다.
그렇담,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아이 관점에서 엄청 억울하겠죠? 자신은 선의를 갖고 한 행동인데, 친구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아이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상대방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내가 도와줄까?”하고 말이죠.
우리는 친절을 많이 베풉니다. 주로 자신의 방식대로 하죠.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합니다. 가장 흔한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시어머니는 온종일 힘겹게 담근 김치를 바리바리 싸서 며느리 집에 가져다줍니다. 며느리가 극구 사양을 하는데도 말이죠. 왜 그럴까요? 본인이 정성껏 만든 김치를 아들도 먹이고 며느리도 맛보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반가워하지 않죠. 왜냐면 김치는 그냥 사 먹으면 되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건, 고부간의 갈등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시어머니의 마음과 며느리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럴 땐, 며느리에게 먼저 물어봤어야 합니다. “김치를 담갔는데 사 먹지 말고 가져가서 먹을래? 넉넉하게 했으니까.” 그때 며느리가 “좋아요. 주세요~ 감사해요. 어머니~”라고 하면 기분 좋게 김치를 주면 되는 것이고, 며느리가 “아니요. 어머님. 감사한데, 저희는 집에서 밥을 잘 안 먹어요. 일하니까 밖에서 사 먹는 일이 많아요.”라고 한다면 “그래. 집에서 안 먹으니 많이 필요하지 않겠구나. 알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만 합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말이죠. ‘내가 준다는데 꼭 그렇게 거절을 해야겠어?’, 혹은 ‘예전 같으면 시어머니에게 저렇게 말할 수나 있었겠어? 세상 참~’하고. 속상한 마음만 키우게 됩니다. 어쩌면 더 나아가 ‘쟤는 시어머니를 우습게 여기나?’ 하고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서로 물어보지 않고 혼자 생각을 한 것에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생각할 거야.’하는 추측, 이것이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좋은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 결국 오해와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으로 끝나니까요.
우리 안의 있는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캐내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그냥 솔직하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건데 당신은 어떠냐’고 말이죠. 그러면 오해가 생길 일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오해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추측해서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서 증거를 찾으려는 행동 때문에 생기니까요.
관계에서만큼은 좀 단순하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물론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싶으실 겁니다. ‘내가 언제 존중하지 않았나?’하고요. 가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상대방에게 베풀려 했던 친절이 ‘내가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대부분은 전자일 겁니다. 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상대방에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강요하듯 말이죠. 그러면 상대방은 존중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압적으로 느끼게 되죠. 아무리 좋은 것도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떠안기면 폭력처럼 느끼게 됩니다. 너무 과하다고요? 절대로 아닙니다.
서두에 언급한 유치원 아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같은 반 친구라고 하더라도 개월에 따라 능력 차이는 굉장히 클 때가 바로 유치원에 다니는 시기입니다. 1월생 친구와 12월생 친구는 엄청난 개인차를 주거든요. 뭐든지 똑 부러지게 잘하는 아이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을 겁니다. 혼자서 낑낑거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 친구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주면 친구는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고 선생님은 자신을 칭찬할 거라는 기대감마저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멋지게 해냈을 때 우는 친구를 보며 오히려 어리둥절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친구의 입에서 자신이 도와준 게 아니고 빼앗았다고 하는 걸 들으면 더더욱 화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니까요. 그러나 그 아이는 묻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강요한 셈이 되었으니. 상대방 친구는 당연하게도 자신이 괴롭힘 당했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김치 에피소드와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반드시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당신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건 어떤 것인지’. 그것이 바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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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호 <씨튼 가족> 간행물 - 通通한 이야기로 소통시리즈에 게재한 저의 글입니다.
이곳에도 공유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