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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Mar 12. 2022

아이와 소통

솔직한 마음으로

“선생님, 저희 엄마는 맨날 저한테 소리 질러요.”
“아빠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래요.”


저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싫겠다. 아빠가 밉겠다.”하고 말이죠.


그러면 아이들은 정색하며 말합니다.

“그래도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요.”
“그래도 아빠는 저를 사랑해요.”     


아이들은 저를 만나면 엄마, 아빠에게 쌓아두었던 불만을 쏟아냅니다. 부모가 미워서일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마치 맹신하듯 말이죠. 물론 어린아이들이라 그럴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또 다르게 이야기하니까요.(웃음) 그렇지만 부모님들은 저를 만나서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뭐가 다를까요? 서두는 같습니다. 아이들처럼 부모님들도 아이들의 문제를 쏟아냅니다. 말썽을 부리고, 힘들게 하고, 매일 사고를 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다고 말이죠. 그러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미우시겠네요.”하고 말이죠. 그러면 부모님들은 말합니다. “쟤 때문에 미치겠어요.”, “쟤만 없으면 살 것 같아요.”하고 말이죠.



제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제부터 이런 예를 왜 들었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부모님들의 “미치겠다”는 “쟤를 포기할 수 없어요. 그래서 미치겠어요.”라는 뜻이고, “쟤만 없으면 살 것 같아요.”라는 말은 “쟤가 없었던 때는 기억도 안 나요. 저의 세상은 온통 저 아이로 가득하니까요. 그래서 더 괴로운 거예요.”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는데 부모는 아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좀 오해가 풀리셨나요?     



우리는 아이들의 말과 부모들의 말의 차이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불평하지만 부모를 절대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자신처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길 바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이야기할 겁니다. 아이가 얼마나 사고를 자주 치고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인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말이죠. 하지만 이 말 역시 조건부가 붙는 말입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으면’, ‘아이가 하라는 대로 잘하면’, 하고 말이죠.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아이들은 부모를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부모님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하는 겁니다.



제가 너무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시나요? 아닙니다. 저 역시 두 아들의 엄마입니다. 제가 부모를 나쁘게 해서 이득 될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아이 대 부모의 싸움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 표현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부모는 아이가 불안합니다. 안심이 안 되고 늘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먼 미래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일 때문에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할지도 모르니까’라는 말로 말이죠. 왜 그럴까요? 부모의 사랑은 걱정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불안한 겁니다. 그들은 만에 하나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을 사전에 막기 위해 늘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니 이를 알 리 없는 아이로선 부모가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아이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니까요. 아이들은 먼 미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엄마가 좋고, 오늘 자신이 아빠로 인해 행복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사랑 표현이 다르니 서로의 사랑 주파수는 늘 어긋나 버리는 겁니다. 부모는 ‘미래’를 대비하느라 바쁘고, 아이는 ‘현재’만 집중하느라 하루가 짧으니까요. 이런 어긋남이 오래될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만큼 오해의 세월이 길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오해를 간직한 채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모는 여전히 성인이 된 아이에게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걱정하며 잔소리를 할 겁니다. 그게 그들의 사랑 표현이니까요. 그러면 그 아이는 어떨까요? ‘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서 걱정하는구나’라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성인이 된 아이는 걱정만 하는 부모를 잔소리만 하는 부모로 기억할 겁니다. 자신의 아픔이나 노력, 성취는 보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못 미더운 아이’로 생각한다고 오해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이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어떨까요? 아이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부모의 한 없는 사랑이 아이에게는 실패감과 무력감을 주니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직하면 됩니다.


부모는 자신의 불안이 무엇 때문인지 아이에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자신의 걱정이 무엇 때문인지 말이죠. 예를 통해 알아볼까요?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닐 때 걱정돼. 집에서는 괜찮지만 학교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면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너를 말썽꾸러기로 볼 것 같아서. 그래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어.”하고 말이죠. 또는 “엄마는 네가 사랑이 많고 친절한 아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모를까 봐 걱정돼. 그래서 사람들을 보면 인사를 잘하라고 이야기하는 거야.”하고 말이죠. 부모가 무엇을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하는지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 말의 깊은 뜻을 아이도 알아차리게 되니까요.    


 

성인이 되어서도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항상 배려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이죠. 그들은 왜 인정에 목말라할까요? 부모의 사랑 표현이었던 걱정을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자신’으로 오해하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늘 부모의 걱정만 끼치는 못난 사람이었다고 말이죠. 그러니 이러한 오해는 부모와 아이 모두를 병들게 한 결과만 낳게 된 겁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을 잘 전달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부모의 걱정이 사랑 표현이라는 걸 말이죠. 이제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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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3월호 <씨튼 가족> 간행물 - 通通한 이야기로 소통시리즈에 게재한 저의 글입니다.

이곳에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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