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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Dec 01. 2020

[사마에게] 피, 주검,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알레포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For Sama

 잠깐 구글맵이라도 펼쳐보시길. ‘시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가. 터키, 이라크, 이스라엘 등 중동의 화약고인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인구는 2200만 ‘정도’란다. 외신에 관심이 없더라도 몇 년 동안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주민을 학살하고 있고, 견디지 못한 수백만이 국경을 넘어 난민신세가 되었단다.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나 알아사드의 인물평은 잠깐 뒤로 하고, ‘학살의 현장’으로 관객을 곧장 인도하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와드 알-카팁과 에드워드 왓츠가 위험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이다. ‘사마’는 와드 알-카팁 감독의 예쁜 딸이다. 폭탄이 하루도 빠짐없이 펑펑 터지는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영화는 지옥 같은 알레포에서 5년 동안 찍은 영상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시리아의 수도는 다마스쿠스이고, 북쪽엔 유서 깊은 알레포라는 도시가 있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다. 이곳(동알레포)이 언제부턴가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독재자’ 알아사드에 대항하는 시민군이 여기에 몰려들었고, 알아사드는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정부군을 투입했고, (뉴스에서 보던) 각종 무장단체가 뒤엉키게 된다. 이란혁명수비대 소속 쿠드스군, 러시아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아프가니스탄 시아파 민병대까지 동알레포에서 무자비한 죽음의 의식을 펼친다. 

영화는 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착각했던 ‘시리아의 봄’에서 시작된다. 그 해 봄, 18살 대학생이었던 와드는 독재에 항거하며 ‘혁명’에 나선다. 캠퍼스의 학생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고 와드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게 그렇게 오래 지속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알아사드의 반응은 무자비한 진압이다. 학생들은 곤봉에 두들겨 맞고, 하천에서는 사체들이 떠내려 온다.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신체가 훼손당한 사체 수 십구, 수백 구가. 그것은 2012년에서 2016년까지 지속되는 ‘동알레포 포위전’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그 암흑 같은 시절, 지옥 같은 동네에서 학생이었던 와드는 의사 함자와 결혼식을 올렸고, 아이 ‘사마’도 낳는다. 도시에는 끊임없이 폭탄이 터지고, 총성이 울리고, 부상자가 쇄도하고, 시체는 쌓여만 간다. 와드는 영국인 에드워드 와츠와 함께 이 악몽 같은 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러시아전투기는 병원이라고 봐주는 것이 없다. 알아사드의 목적은 알레포의 모든 반군세력이 무릎 꿇은 것이니, 시체가 더 많이 쌓이는 것을 바랄 뿐인지도. 


<사마에게>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한 차례 폭탄세례가 이어진 뒤 병원으로 이송된 산모이다. 엉망진창인 수술실에서 급하게 제왕절개술로 아이를 받아내지만 아기는 미동도 않는다. 열악한 병원, 함자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가슴을 누르고, 등을 쓰담듬고, 손바닥으로 때린다. 한참을. 그제야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진다. “오, 하느님 맙소사” 객석에선 탄성과 한숨이 함께 쏟아진다. 

전장의 한 가운데에 태어난 ‘사마’는 어떤 아이일까. 건물 밖에서는 폭탄 터지는 소리, 끔찍한 죽음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전투기 날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관객은 그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지만 ‘사마’는 마치 귀가 멀어버린 것처럼 무덤덤하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가 잘도 자듯이. 전쟁에 무덤덤해지고, 가족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이 산처럼 쌓일 경우 그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2011년 봄에 시작된 시리아내전은 수십 만의 사망자를 냈으면, 수백 만이 고향을 떠나야했다. 와드 가족(와드, 함자, 사마)과 병원 동료들은 국제 인도주의기구의 중재로 2016년 연말 알레포를 무사히 빠져나온다. 그리고 난민이 되어 버린다. (시리아를 떠난 난민은 560만에 이른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 최우수다큐멘타리상(Golden Eye)을 받았고, 곧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장편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다. 그 외 전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60개가 넘는 상을 타며 상찬받았다. 영화를 보고나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시리아의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를 독재자라고 지칭했지만, 중동 한복판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그 해결책이 난망일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느낀 것처럼, 서구 제국주의가 함부로 그은 선들의 후과이고, 지금도 계속되는 강대국 이해관계의 배꼽이다. (박재환 영화리뷰 20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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