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내 이럴 줄 알았지
맹렬한 기세 정도가 아니라 모두가 날씨 탓을 했던 올여름, 그 더운 날씨를 견뎌내고자 새벽 네시에 일어나 훈련을 했던 것은 결국 가을철 메이저 대회인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이하 춘마)과 "JTBC 서울 마라톤"(이하 제마)에서 잘 뛰어보고자 함이었다. 춘마는 그 어렵다는 '접수령'을 넘지 못해 자동 포기가 되었고 가까스로 접수한 제마에 모든 걸 걸었다. 그러다가 제마 대비 훈련용으로 뛰었던 대청호 마라톤 풀코스에서 무리를 해서 피로골절이 왔다는 오진으로 2주간 쭉 해오던 달리기를 멈추고 아무런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나에게는 이것이 두고두고 뼈아픈 후회가 되었다. 몇 달을 해오던 훈련의 리듬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이고 이후에 이어 간 훈련도 왠지 맥이 빠져 버린 것이다.
그 사이에 있었던 10월의 조선일보 서울 Race는 하프코스 경기로 몸 상태를 확인해 보기에 좋은 대회였는데 이 대회에서 후반부에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풀코스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에는 뒷심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장거리 훈련과 인터벌 등 해야 할 훈련이 많았지만 이 시기는 내가 입학사정관 자격으로 학교에 수시입시 서류 심사와 내 전공 연기 실습 감독, 수시 입시 면접위원 등 입시 관련 업무가 끊임없이 몰려와 마음 편히 연습할 여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쭉 신어왔던 좁은 볼의 나이키 알파플라이, 베이퍼플라이와 이제 작별하고 넉넉하고 편안한 볼 크기의 뉴발란스를 영입해서 테스트 러닝도 충분히 했어야 했는데 힘도 딸리고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새 신발로 10km 서너 차례, 20km 한 차례 뛰어 본 것이 다였다.
경기 전날인 11월 2일은 수시 면접고사였고 나는 전공 면접관으로 45명의 지원자에게 10분씩 면접을 했다. '공정'과 '공평'이 절대적인 대학 입시 면접에서 1인 최소 10분 이상의 질의응답을 통해 토탈 450분 이상 동안 평가를 하는 하루 일정은 점심 먹을 시간도 충분치가 않아서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어야 할 정도였다. 풀코스 대회 전날은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하루를 꼬박 잡아먹은 입시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주말 경부고속도로는 꽉 막혀서 피로를 증폭시켰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피곤하다.
피곤한데 말똥말똥.
내일 기상 후 경기 출발 지점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까지의 이동 동선을 그려봤다.
말똥말똥.
상암에서 양화대교, 마포대교, 청계천, 군자역, 잠실대교, 올림픽공원으로의 코스를 달리는 나를 그려봤다.
말똥말똥.
열 시에 누웠다가 새벽 3:30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난밤 수도 없이 그렸던 출발선에 섰다. 날씨는 쾌청, 다행히 경기장 근처 수산시장 화장실에서 똥도 시원하게 누었다. 잠도 못 자고 격무에 시달린 상황에 비해 컨디션이 올라오고 기분도 좋아졌다. 내 작전은 초반 10km는 5:50-6:00 언저리로 달리다가 몸이 풀리면 5:30까지 밀고 후반 20km에는 아무래도 속도가 떨어질 테니 6:00선을 지키며 경기를 네 시간 정도에 마치자는 것이었다. 날씨가 정말 좋았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뛰었는데 초반에는 다 좋았고 중반에 오른쪽 발목이 시큰한 통증이 올라왔는데 착지를 할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달려보니 한 시간쯤 뒤엔 사라졌다.
양화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가로지르고 다시 마포대교를 건너 시청 쪽으로 달릴 때 한강 다리에서 아무런 막힘없이 북한산이 쭉 뻗어 보였는데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과 선명하게 보이는 북한산 줄기가 너무 상쾌했다. 컨디션도 한층 올라오고 이 무렵 속도도 5:20 언저리로 예상보다 지치지 않고 올라가서 내심 이러다가 별 어려움 없이 '서브 4' 기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수대에는 여느 대회보다 사람들이 더 질서가 없었다. 달리던 대형이 무너지며 급수대로 몰려가서 부딪히고 쏟고 하는 틈에 끼이고 싶지 않아서 몇 번은 그냥 패쓰했다. 이번에 나는 카멜백 러닝벨트를 착용하고 뛰었는데 파워젤 6개와 염정 36알을 챙겼다. 파워젤은 매 8km마다 잊지 않고 꺼내 먹었는데 대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는 파워젤에 몸이 무척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편이어서 달리다가도 파워젤만 먹으면 속도가 나고 피로감이 사라졌다. 반면 이번에는 챙겨간 염정을 한 번도 먹지 못했는데 염정을 먹으려면 급수대에 멈추고 서서 물을 두 컵은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흥분한 러너들 무리 속에서 그 복잡한 과정의 염정을 챙겨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물을 많이 마시다가는 반드시 화장실에 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도 선뜻 염정에 손이 가지 않게 만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하프 지점을 지나자 기력이 딸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속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5분대는 계속 유지했는데 28km 지점에서 6분대로 떨어지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후로 6:38. 6:58 그리고 7분대... 안간힘을 써서 다시 6분대 진입을 한번 했지만 30km 지점부터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던 것 같다. 사실 하프 지난 시점부터 양쪽 종아리에서 엄지 손가락만 한 근육이 뭉쳤다 풀렸다 하는 게 느껴졌는데 이것은 나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바로 '쥐 (cramp)'의 전조 증상이었다. 여러 번 쥐를 경험해 봤고 오늘 같은 컨디션이면 당연스럽게 쥐가 올 것 같아서 살살 달래가면서 달렸는데 후반부에 들어서 뭉치는 덩어리가 커졌고 한 번씩 발이 지면과 비정상적으로 부딪히거나 다른 주자와 충돌할 것 같아서 피하는 것 같은 돌발적인 동작을 할 때 쥐가 오려는 느낌이 커졌다. 쥐가 난다면 무척 아플 것이다. 나지도 않은 쥐에 공포감이 생겼다.
내가 속한 클럽의 응원단은 32km 지점과 38km 지점에서 파워젤과 레몬, 콜라, 꿀 등을 나눠주며 사진도 찍어주는데 잠실대교를 건너면 이들을 만날 터였다. 이미 얼굴은 굳어있고 찡그린 채 숨을 몰아쉬고 달리지만 응원단을 만날 때는 미소 지으며 만나겠다는 다짐에 이들이 나오기 전부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응원단과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유쾌하게 만나서 콜라도 마시고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받으며 골인 지점을 향해 뛰었다.
이제 다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40km 언덕에서, 이제 2km만 더 가면 4시간 초반대의 기록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던 그 지점에서 나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며 무릎을 찧었다. 바닥으로 넘어지며 그때까지 힘을 주지 않고 살살 달래며 성나지 않도록 애지중지 모셔왔던 종아리와 허벅지에 나도 모르게 바짝 힘이 들어갔다.
쥐는 처음에는 한쪽 종아리에 났는데 마침 옆에 있던 안전요원들이 달려와 금방 풀어주었다. 그런데 카멜백 뒷주머니에 넣어둔 염정 알약병이 허리를 눌러서 몸을 일으키다가 다른 쪽 종아리에 쥐가 났고 먼저 쥐가 난 다리를 놓고 다른 쪽 쥐를 풀려고 하자 먼저 쥐가 난 다리에 다시 쥐가 났다. 누워있으니 이들이 세워서 잡고 있는 내 종아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근육 덩어리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몸을 비비 꼬아서 나는 마치 루게릭병이나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과 몸이 뒤틀리는 지체부자유 환자 같은 상태가 되었다.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커져서 비명이 터져 나왔는데 덕분에 그때까지는 가만있던 허벅지에도 쥐가 번져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 이상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앰뷸런스가 왔지만 쥐가 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들이 건네준 이온음료와 근육이완제를 먹었지만 한 시간은 있어야 약효가 퍼진다고 했다. 잠시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발작처럼 쥐가 몰려오자 이제는 공포에 질린 나를 네 명의 남자가 들어서 앰뷸런스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구조대원은 나에게 병원에서 근육이완 진통 주사를 맞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자고 했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첫 번째 병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응급실 당직의가 자기네는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돌려보냈다. 두 번째는 국립병원인 경찰병원이었는데 당직의가 쥐가 난 사람은 자기 전공과 다르다고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앰뷸런스 대원들도 혀를 찼고 나도 요즘 응급실 상황이 어떤지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몸이 좀 가라앉았다고 판단하자 대원들은 나를 경기장에 데려다줄 테니 휴식을 취하다가 가족을 불러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자기들을 찾는 콜이 계속 들어오는데 '쥐가난 러너'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한 것이다. 나도 그제야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어서 아직 겁은 났지만 경기장 그늘에 내려주고 돌아가는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렇게 내가 여름 내내 고대하던 가을의 대회는 DNF(Did Not Finish)의 성적으로 끝이 났고 입맛도 없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대회 시기가 입시와 맞물렸고 하필이면 올해 입학사정관을 했어야 했던 게 경기 전 컨디션과 대회준비에 차질을 주었다. 여름 끝 피로골절이라는 오판으로 2주간 연습을 중단했던 것이 여름철 연습의 맥을 끊었고 이후 연습에서 다시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돌아올 때의 심정은 참담했으나 하루가 지나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서 다른 이들의 경기 사진을 보고 있자니 다시 내년의 경기를 꿈꾸게 된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다시는 풀코스를 뛰지 않으리라 다짐해 놓고 말이다. 이제는 목표를 좀 낮추고 평소에 꾸준한 연습으로 장거리가 익숙해져야 한다. 주당 마일리지가 50km 이상은 나와야 한다. 한 달에 서너 번은 20-30km 조깅으로 긴 호흡으로 달리기를 루틴으로 만들어야겠다. 풀코스 달리기에 요행은 없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 수련에도 정성을 쏟아야 한다. 연습한 만큼, 수양한 만큼 성적은 나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