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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콩 May 30. 2019

뉴욕에서 1층에 산다는 것 -5 (마지막)-

시끌벅적한 대도시의 아파트 1층에서 살아남기

그 외에도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다. 주말마다 쿵쿵거리는 음악을 틀고 파티를 즐기는 앞집녀들 (이건 1층의 특수성은 아니다), 우리 집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비상구를 저층 주민들이 이용할 때마다 벽이 울릴 정도로 큰소리로 닫히는 문, 건물 현관 출입문 닫히는 소리...


소음이나 불편함의 일부는 관리사무실에 얘기해서 해결했지만 일부는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1층 거주자가 감수하고 지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 시리즈의 부제를 “대도시의 1층 아파트에서 살아남기”라고 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여러 가지 1층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첫째, 1층의 장점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우리 대형견은 집에서 늘어져 낮잠을 잘 때가 많지만 가끔씩은 공놀이도 하려 한다. 집에서 공을 던져줄 공간이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공 튕기는 소리와 35kg의 덩치로 뛰어다니는 개의 발소리가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 (이 집은 옆 이웃도 없다), 그래서 공놀이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제 18개월이 지나 뛰어다니고 보이는 것마다 던지고 끌고 다니는 아기는 또 어떠한가. 눈치 볼 일 없이 애와 개가 마음껏 놀 수 있으니 다른 불편함 따위는 감수가 된다.


둘째, 우리 건물의 장점을 생각한다. 이 건물에는 뉴욕이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이 있다. 특별하지도, 소위 말하는 힙하지도 않은 그냥 옥상일 뿐이지만 맨해튼 스카이라인과 다리들, JFK 공항까지 뉴욕이 360도로 보이는 전망이다. 게다가 날씨가 좋은 저녁의 노을은 얼마나 멋진지... 한 달에 두세 번이나 올라갈까 말까 할 정도로 자주는 안 가지만 가끔 답답하면 아기를 데리고 올라가서 구경을 시켜주고 온다. 이 역시도 별건 아니지만 1층살이가 서러워질 때 “그래도 우린 멋진 곳에 살고 있어”라며 셀프 위로하기에는 꽤 쓸만하다.


옥상에서 본 저녁노을. 오른쪽 멀리 작게나마 맨해튼이 보인다.

셋째, 우리 동네의 장점을 생각하며 우리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남편의 직장 특성상 저녁 9-10시 퇴근을 하는 날이 일주일에 서너 번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기와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도 해야 하고... 아무리 그래도 여긴 범죄율 높은 뉴욕이다 보니 밤낮으로 위험하지 않은 동네를 찾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했다. 그래서 찾은 이 동네는 정통파 유대인들과 동유럽 이민자가 주류를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치안 하나는 정말 좋다. 맨해튼과의 접근성, 치안 등에 비해서는 렌트도 생각보다 낮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네이다. 1층 생활에 불편함은 있지만 동네가 안전하니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넷째, 도저히 불편함을 못 참을 지경에 도달하면 상대에게 정중히 부탁을 해본다. 정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불법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내 상황이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지금 상당히 불편한데 미안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그 행동 좀 멈춰줄 순 없겠니” 정도로 예의를 차려 부탁하면 경험상 거의 두 종류의 반응 중 하나가 나온다. 하나는 운 좋게도 상식적이고 따뜻한 사람인 경우, 아 그래 미안~하고 자리를 옮겨주는 사람. 다른 하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또는 네 불편함은 내 알 바 아니야 정도의 쌀쌀한 반응이다. 물론 그 중간 정도의 반응도 있다. 별 말없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영어를 못하나? 싶을 정도로...) 어쨌든 요청해보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가끔씩 쓰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1층 생활에 본의 아니게 불편을 주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걸 쓰면서도 웃기긴 한데,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공사장 인부들, 우리 집 앞 보도에서 떠들 권리가 있는 소녀들 등 그들의 권리를 생각하면 뉴욕 같은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한 내 불편함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렇게 크고 인구밀도도 높은 도시에서 어찌 내 처지만 생각하고 내 주장만 하고 살 수 있나 싶은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일례로, 옆 공사장 여건이 얼마나 열악하면 인부들이 쉬는 시간에 길가로 나와서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워야 할까...


또 한 번은 중년의 여성분이 밤중에 우리 집 안방 창문 바로 아래에서 고함을 치며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뭔가 굉장히 속상한 일이 있나 본데, 러시아어로 통화를 하니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고함과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 반복되는 걸 보면 우리의 잠깐(이라고 쓰고 30분이라 읽는다) 동안의 불편함보다는, 나가서 그분 괜찮은지를 묻고 싶었다. 격한 감정에 그분도 기댈 곳이 필요해 우리 창문 아래 벽에 기대어 통화를 하고 있는 거라 이해하려고 그 날 정말 노력 많이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성인군자, 보살의 자세로 이해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게 하나 있으니,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들이다. 길이 막혔을 땐 경적을 울린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울리고 본다. 누르고 바로 멈추면 괜찮은데 5 초건 10 초건 계속 누르고 있는다. 여기가 주거지역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낮으로 울려댄다.


그런데 경험상 1층 스트레스를 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마음가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인 것 같다. 집 근처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조금만 참으면 저 사람도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실제로도 집 앞에서 떠드는 사람도, 담배를 태우는 사람도 자기 볼 일을 보고 나면 제 갈 길을 간다. (물론 그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와서 떠들거나 흡연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쯤 되면 1층 생활은 도를 닦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도를 얼마나 더 닦아야 1층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뉴욕으로 이사 온 후 일 년간 별 탈 없이 지내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쭉 별 탈 없는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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