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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콩 Jun 04. 2019

우리는 차가 없다.

뉴욕에서 차 없이 사는 우리 이야기

우리는 뉴욕시 브루클린이란 곳에 살고 있고, 차가 없다.


작년 여름 뉴욕으로 이사하기 전 타던 차를 처분하고 여기에 와서 구입을 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도무지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가 필요하면 Lyft, Uber 같은 앱 호출 서비스, Zipcar 같은 카 셰어링 등의 완벽하진 않지만 괜찮은 대안이 있다.


아기와 대형견까지 있는 가족인지라 이따금씩 불편할 때가 있다. 차가 있었으면 좋겠긴 하다. 일단 몸이 편하지 않은가! 뉴욕은 대중교통이 편리하긴 하지만 너무 지저분해서 아기를 데리고 탈 때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든다. 가끔씩 드라이브도 하고 싶다. 게다가 맨해튼에 산다면 정말 차가 필요 없을 수 있지만 브루클린은 더 넓고 대중교통이 애매한 곳도 있다. 날씨가 궂은날 또는 출퇴근 시간에는 앱 호출도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런데 갓 학위를 딴 사회 초년생 남편과 논문 마무리를 위해 경제적 수입을 보류한 아내인 우리는 그저 이런 이유의 차량 구입이 합리적인 소비인지를 거듭 고민하게 된다. 차가 정말 필요한 건 한 달에 한두 번이나 될까 말까이다. 손익계산을 해보면 ‘손’이 ‘익’보다 말도 안 되게 커서 가끔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즉, 차가 없는 이유는 경제적 측면이 크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돈이 굳은 것 이외에도 얻은 것이 있다. 뉴욕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의 교류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만난 많은 뉴욕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친절했고 나도 그 일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아기를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말도 못 하는 아기가 낯선 환경에서 하루를 보내고 힘들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나머지 퇴근시간 만원 버스 안에서 창피하게도 갑자기 눈물샘이 폭발했다. 엄마가 펑펑 우는데 휴지가 없어 그 눈물이 안고 있던 아기한테 뚝뚝 떨어지는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연 있는 여자로군...”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휴지를 건네며 “이걸로 닦아. 그리고 다 잘 될 거야.”라며 위로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근처에 있던 중년의 여성이 미소를 띠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그들은 이유는 몰랐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었다.


또 한 번은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한적한 낮시간,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볼 일을 보러 나가고 있었다. 내가 탄 지하철 칸에는 사람이 다해봤자 열 명 정도밖엔 없어서 다들 공간이 여유롭게 앉아있었고, 나 또한 출입문에서 좀 떨어진 중간쯤 앉아있었다. 그런데 열차가 역에 들어서고 문이 열리자 한 여성이 우리 근처 문으로 타더니 다짜고짜 나를 노려보며 화를 내는 것이다. 왜 유모차 따위는 끌고 타서 자기 앞길을 막냐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통로에 지나갈 공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여성이 지나가려고 할 때 나 또한 예의상 유모차를 내 쪽으로 최대한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욱하는 마음에 따졌다. 유모차 갖고 탄게 죄도 아니고 뭐가 불만이냐. 여기 지나갈 공간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네 앞길을 막긴 뭘 막았느냐고 따지며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러자 그 여성은 말끝을 흐리며 이내 칸 맨 끝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근처에 있던 한 중년 남성이 다가오더니, 저 여자 정상은 아닌 거 같으니 네가 참아라, 이렇게 예쁜 아기 데리고 나와서 화내면 아기가 놀라잖냐며 나를 달래는 것이다. (실제로도 아기는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씩씩거리던 나는 그제야 진정하고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의 친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와 같은 역에서 내리게 되자 그는 내가 먼저 내리도록 배려를 해 주고, 역 밖으로 나가는 출구까지 나와 같이 이동해 굳이 문을 열고 잡아주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잠깐의 일로 지하철에서 혈압이 올랐지만 그의 배려로 마음이 따뜻해진 날이었다.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주는 뉴욕 지하철.

그 외에도 소소하게 훈훈했던 순간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아기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탈 때면 거의 항상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가끔은 버스기사가 “누가 이 아기랑 엄마한테 자리 좀 양보하라”며 승객들을 압박(?) 하기도 한다. (솔직히 그럴 때면 괜스레 미안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점점 그렇게 친절을 베풀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초저녁 만원 버스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타려는 한 엄마를 본 순간, 나도 서 있는 입장이었던지라 누가 저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리려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 순간 출입문 근처에 아이와 서 있던 그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여기 자리 하나 있어요! 아이부터 좀 앉히세요!”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그 엄마가, 저희 아이 좀 안아서 거기 앉혀주시면 안 될까요? 라길래 (사람이 정말 많아서 엄마가 아이와 바로 움직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이를 받아서 앞자리에 앉히고 아이에게 “잠깐 혼자 앉아있어야겠는데 걱정 마, 엄마 금방 오실 거야”라고 안심을 시켰다. 친절을 베풀었다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별 것도 아니었지만 과연 과거의 나였다면 그 정도라도 했을까 싶다.


이렇듯 차가 없음으로 인해 우리는 차가운 도시 이미지와는 다르게 반전 있는 이 도시에 점점 동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 여담으로...

뉴욕시의 대중교통은 정말 옛(?)스럽다. 지하철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게 된 건 2010년 이후였고 버스와 지하철은 지난 25년간 소위 긁는(?) 방식의 MetroCard라는 교통카드를 써 왔다. 그나마 긁는 것도 잘 안 돼서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긁고 또 긁고 될 때까지 긁으면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달부터 OMNY라는 신규 결제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OMNY는 단순히 갖다 대는 교통카드를 넘어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애플 페이나 삼성 페이, 그리고 심지어는 직불이나 신용카드를 직접 찍어도 결제가 되는 시스템이다.


아직 인터넷도 제대로 안 되는 뉴욕 지하철이 이제야 슬슬 2019년 기술 수준을 따라잡나 싶어 기대를 했는데 우선 주요 역에만 시범 도입을 했고, 뉴욕시 전체 버스 및 지하철역에는 2020년에야 보급이 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 심지어는 미국 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도 한참 늦은 업그레이드이지만 기존 시스템이 워낙 비효율적이었던 터라 불만보다는 반갑기 그지없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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