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콩 Nov 07. 2019

미국에서의 나의 법적 신분은 ‘대기자’다.

영주권 신청 그 이후의 어정쩡한 체류자격 이야기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은 한국,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껏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다른 나라에 거주하면서 법적 신분이 모호했던 적도, 신분 때문에 불편하거나 문제가 됐던 적도 없었다. 적어도 미국에 거주하는 지금까지는.


내 여권에는 지금 미국에서의 나의 체류자격이 나와있지 않다. 단지, 수년 전 입국하면서 받았던, 이미 유효기간이 만료된 유학생 비자만이 여권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을 뿐.


현재 나의 공식 신분은 “green card pending”이다. 해석을 하자면, ‘영주권 대기’ 정도의 의미이다. “무슨 비자로 체류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참 애매한 게, ‘영주권 대기’는 비자가 아니다. 다만, 미국 체류 중 기존 비자에서 영주권으로의 체류자격 변경 신청 시 그게 처리될 때까지는 계속 머물러도 좋다는 허가 정도이다. 그런데 그 허가가 여권이든 어디든 서면으로 나와있질 않다. 그냥, 미국 이민국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는 정도...?


유효기간이 살아있는 비자가 여권에 붙어있었을 때와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그땐 당당했다면 지금은 좀 주눅 든 느낌이랄까... 물론 불법체류도 아니고, 평소엔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일상생활엔 영향이 없지만 뭔가 마무리되지 못한, 그래서 체한 듯 답답한 느낌이 문득 들 때가 많다.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예를 들자면, 외국인의 경우 운전면허증의 유효기간이 체류자격의 유효기간과 비슷하게 주어진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영주권 대기’는 서면으로 주어지는 공식 체류자격이 아니라서 내가 사는 뉴욕주에서는 이 자격만으로는 면허증 갱신을 할 수 없다. 다행히 영주권 대기 중에 임시 취업허가와 임시 재입국허가가 합쳐진 ‘콤보카드’란 것을 신청할 수 있고 그걸 받게 되면 면허증도 그 유효기간에 맞춰 갱신할 수 있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하신다면, 이 콤보카드란 것의 유효기간은 보통 딱 1년이다. ‘영주권 대기’라는 게 영주권 심사가 끝날 때까지로 한정된 임시 자격이기 때문에 임시 취업 및 재입국허가도 길게 안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난 면허증 유효기간이 지난 8월에 끝나서 그때 갱신을 했는데 콤보카드 유효기간이 내년 3월까지라 달랑 7개월짜리 초단기 면허를 받았다. 3월에 콤보카드를 갱신하면 면허도 또 갱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영주권 심사가 끝날 때까지 1년 단위로 갱신, 또 갱신...


그리고 임시 재입국 허가를 이용해 여름에 한국에 갔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입국심사대에서 가족과 분리돼서 옆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으로 ‘에스코트’ 됐다. 이민국 사무실이었는데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참으로 후덜덜한 곳이었다. 권총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다수 있고 대기실 소파에는 수갑도 걸려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임시 재입국허가로 입국하는 경우 이민국에서 따로 심사를 해야 해서 여기를 꼭 거친다고 한다. 다른 대기자들은 일부 인터뷰도 하는 듯했지만 내 차례가 됐을 땐 그냥 이름만 부르고 여권을 돌려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지금의 학위과정을 마치고 내년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어떤 고용주가 1년짜리 임시 취업허가를 가진 지원자를 좋아라 할까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최근 미국 영주권 심사가 강화되면서 뉴욕 사무소의 심사 소요기간이 18개월-24개월 정도까지 늘어났다. 즉, 영주권을 신청해놓고 ‘영주권 대기’ 상태로 2년까지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결혼에 의한 영주권 신청이라 크게 잘못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가끔 상상을 해본다. 2년을 기다렸는데 심사에서 탈락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나.. 미국 시민권자인 남편과 아이를 두고 나만 가야 되나, 아님 아이를 데려가야 하나... (살짝 선녀와 나무꾼 같은 이 시나리오는 무엇ㅋㅋㅋ)


예전엔 내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던 체류자격의 모호함이란 걸 체험하고 있는 지금,  이렇게 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면서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가는구나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차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