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그늘에 들어선 뉴욕의 일상
뉴욕주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뉴욕시 북부 뉴로셸이란 동네를 봉쇄하기에 이르렀다. 뉴욕시 자체도 3/12자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브로드웨이 공연도 중단시키는 등 연일 경계태세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확진자가 20명 가량인 브루클린에 사는 우리의 일상은 예전과 거의 다름없다. 어린이집도 매일같이 예방수칙과 행동요령에 대한 이메일을 보내오긴 하지만 아직은 정상적으로 열고 있다. 그러나 전염병이란 게 언제 어디에서 불시에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기에 조금씩 경계는 하게 된다.
며칠 전, 아이가 눈병에 걸려 동네 병원을 찾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 그때 마침 병원으로 들어온 사람 한 명과 (이하 “환자”) 접수 직원 간의 대화가 들렸다.
- 환자: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싶어요.
- 직원: 여기서는 검사를 할 수 없고 지정된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이 근처 지정된 곳은 (블라블라...)가 있으니 그리로 가 보세요.
- 환자: 근데 지금 증상이 많아서 당장 해야 될 것 같단 말이에요.
- 직원: 죄송해요, 여긴 진단키트가 없어요. 오늘 중에 큰 병원으로 가세요.
듣던 중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증상이 많다는 그 환자는 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병원엘 온 걸까?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내 입장에선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그리고 그녀와 병원 직원 모두 어쩜 그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게 태평한지... 병원 직원은 마스크에 방호복까지 착용하고 있었는데, 마스크 하나 꺼내 주기가 어려웠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행동수칙조차 없었던 걸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증상을 호소한 그녀가 마스크를 쓰지 못한 건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마스크는 진작부터 품절이다. 심지어 동네 병원을 가도 비치가 되어있지 않고 부탁을 해야 하나 꺼내 준다. 그런데 보건당국에서 일반인의 마스크 사용 자제를 신신당부한 까닭인지, 아니면 그냥 이 곳의 문화 때문인지 길거리나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많은 마스크가 다 어딜 갔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이제는 증상이 있어도 쓸 마스크가 없는 상황인 거다.
게다가 손 세정제와 살균 스프레이, 살균 물티슈 등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가게들마다 마스크, 손세정제는 품절이라는 안내가 지난달부터 붙어있다. 병원과 공공장소에는 아직 손세정제가 비치된 곳이 많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지속될진 의문인 상황이다.
오늘은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브루클린에 위치한 주정부 사무소를 방문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밀폐된 공간에 수십 명이 빽빽하게 붙어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손 세정제 또한 대기실에는 비치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손을 씻을라치면 지금 있는 6층에서 1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까지 내려가야 한단다!
보건당국은 대중에게 아직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률이 낮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만 반복하고 있다. 아울러 비누로 꼼꼼하게 손을 자주 씻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도록 부탁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능하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고 특히 혼잡한 시간 지하철이나 버스를 피할 것을 권고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대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들의 출퇴근은 어찌할 것이며, 지각 시 급여가 깎이는 파트타임 근로자들을 배려하지 못한 권고사항이라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이번 주부터 맨해튼 주요 대학들은 모든 수업과 회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한 상황이다. 남편의 직장도 그에 해당하다 보니 우리 부부는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하게 됐다. 이렇다 보니 우리도 외출 자체는 최대한 자제하게 되는데 평소보다 슈퍼는 더 자주 가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가서 식료품, 물, 비누와 같은 생필품을 사 오는데 아직 쟁여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슈퍼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물건이 아직 많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물과 통조림, 화장지 등을 쟁여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어제까지만 해도 상황이 괜찮았던 동네 마트에 오늘 가보니 화장지와 청소용 세제 등이 동난 상태였다. 여론과 보건당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며 만류하고 있지만, 전염병이라는 불확실성 앞에서 조금이라도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가 사재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솔직한 심정으론 나도 코스트코에 가서 이것저것 잔뜩 집어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마스크 품절 사태를 보고 있자면 일찌감치 마스크를 쟁여뒀던 사람들이 승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우린 일단 당국을 믿고 이 사태를 침착하게 지켜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을 일은 제발 없기만을 바라며 말이다.
** 모두들 이 시기 건강하게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