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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콩 May 30. 2020

코로나 시기, 뉴욕.

(사진: REUTERS/Brendan Mcdermid via WEF)

3월 중순부터 뉴욕 현지 뉴스는 연일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 급증세, 그리고 장례식장과 영안실에  자리가 부족하다는 보도로 채워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우리 가족은 슈퍼에 장 보러 가는 것과 개 산책의 목적 이외에는 그 어떤 외출도 삼가고 주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3월 말의 어느 날. 오전 11시쯤 개와 함께 산책을 나가던 중, 아파트 맞은 편 건물 앞에 경찰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경찰관 두 명이 차 밖에서 누군가에게 각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별로 대수롭게 생각치는 않고 지나쳐 한 시간 가량 개 산책을 시키고 돌아왔을 때 그 경찰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남편한테 얘길하니 자기가 그 경찰차가 오전 10시에 도착하는 걸 창 밖으로 봤다고 한다. 무슨일이 있구나 싶었지만 이내 잊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오후 2시가 되고 3시가 돼도 그 경찰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고 두 명의 경찰관은 계속 분주히 건물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 때쯤부터 창 밖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오후 4시쯤, 갑자기 상황이 분주해 지더니 장의차가 도착했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장례식장 직원같은 사람이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같은 사람이 흰 천에 싸인, 시신으로 보이는 것을 바퀴 달린 들것에 밀고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사태 파악이 됐다.


그 건물에 사망자가 발생했고 (코로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오전 10시쯤 도착했는데 시신을 안치할 곳이 부족해서 경찰관들이 계속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섭외된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러 온 것이다. 보통은 응급차 또는 시립 안치소에서 수습을 하는게 일반적이지만 그마저도 인력이 부족해 사설 장례식장에서 직접 온 모양이었다.


그 장면을 보니 뭔가 마음이 엄숙해졌다. 사망자야 언제든 발생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 사망자 폭증으로 인해 시신 수습만 6시간이 걸렸다는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코로나의 영향의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 정도가 흘렀다. 뉴욕시의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모든 비필수 사업장에 대해 폐쇄 또는 재택근무 명령이 내려지면서 도시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 날 역시 나는 개 산책을 위해 늘 가던 코스를 걷고 있었다. 그 코스 중에는 작은 종합병원의 응급실 입구 맞은편을 지나는 부분이 있다. 그 곳을 지나치던 중, 평소에 못 보던 냉동 컨테이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Thermo King”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어서 냉동 컨테이너인 것을 알았다. 이상했던 건, 앞에 트럭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컨테이너만 덩그러니 응급실 입구 앞에 서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도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환자가 많아서 의약품이나 식품을 많이 저장해야 하나, 정도로 생각한 나... 지금 생각하면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모르겠다.


그건 코로나 사망자 급증으로 병원 영안실 자리가 부족해 시신 안치를 위해 도입한 것이었다. 그걸 알게 된건 어느날 하얀 천에 싸인 시신으로 보이는 것을 지게차가 그 컨테이너 안으로 나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며칠 뒤엔 그 컨테이너 입구에 아예 가림막이 들어섰다. 아마 근처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후에는 개 산책 코스를 바꿨다. 그리고 며칠 후, 산책 중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불현듯 알 수 없는 공포감과 절망감이 몰려왔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피해 모두가 격리된 상황에서 발생한 집단 고독감과 불안감. 그리고 그런 와중에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되어 장례조차 제대로 못 치루게 된 자들에 대한 생각에서였을까. 아니면 순전히 이기적인, 나 또는 우리 가족이 걸리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이었을까?


그 이후 한동안 뉴스를 가급적 안 보려고 노력했다. 요즘은 그저 모두가 무사히 이 시기를 이겨내서 하루 빨리 뉴욕의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지내고 있다.


다행히도 여기의 상황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걱정스럽다. 날이 풀리면서, 그리고 감염자 증가세가 완화되면서 두 달 넘게 뉴욕의 좁은 아파트들에서 격리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길거리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보상심리 때문에라도 격리 종료 이후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이 외출하고 타인과 접촉하려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가 이 바이러스로 인해 굉장히 이상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기를 넘기고 몇 년이 지난 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제발 우리 인생에 다시는 이런 시기가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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