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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Feb 15. 2020

지금이 아니면 절대 읽지 못할 것이다.

Now or Never!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독서로 인해 인생의 신기원을 맞이했던가. 그런 책은 우리에게 기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직업 특성상 (국내)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대부분 직접 운전을 하기보다는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특히 장거리일 때 반드시 KTX를 탄다. 버스도 자주 이용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KTX는 흔들림이 덜하여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 안에서 보내는 2~3시간이면 책 한 권은 거뜬히 읽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시간 활용법도 또 없다. 출장 계획이 잡힐 때면 일부러 읽고 싶은 책을 살 때도 있지만, 사 둔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나, 오래전 읽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을 찾아본다. 마치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친한 친구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용산역에서 기차 시간이 약간 남아서 역내를 둘러봤던 적이 있었다. 그때 전주를 홍보하는 광고판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을 크게 흔들어 놓는 짧은 한 줄이 있었다.

  “Now or Never"

  지금이 아니면 결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간판 앞에서 한참 동안 말없이 서서 쳐다보았다. 책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된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나름의 독서법을 ‘생존 독서’로 이름 붙이고 나서 진짜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한참 책에 집중해서 아침에도 책, 점심에도 책, 저녁에도 책,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이때는 속된 말로 책에 관해서는 한참 물이 오른 때여서 읽어야 할 책을 순서를 정해놓고 끊임없이 순서대로 읽곤 했었다.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독서방법 중에서 ‘집중 독서’의 경우, 점찍어 놓은 작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을 읽고자 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책 속의 책’의 경우, 책 속에서 언급된 책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읽고자 했었기 때문이다.

  거의 웬만한 베스트셀러의 경우, 대한민국 책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버전의 책들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책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말 그대로 완역본, 양장본, 포켓본, 어린이판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마치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듯 출판사, 번역가, 출간 연도, 책의 두께 등 원하는 대로 골라서 읽을 수 있다. 베스트셀러의 경우 웬만해서는 작가와의 협의하에 책이 다시 재출간되는 경우도 많다. 똑같은 내용으로 재출간되는 경우도 있고, 작가의 추가적인 원고 삽입을 통해 재개정판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만약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품절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런 책을 손에 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새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중고서점이 워낙 잘 발달하여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곧 있으면 재출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주 오래전에 출간된 책의 경우다. 그것도 장르나 내용이 많은 사람이 읽을 만한 것이 아닐 때는 찾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재출간할 확률도 별로 없다. 이럴 때는 순전히 손품, 발품을 팔아야 한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 약 7년 동안 20여 권이 그랬다. 내가 읽고자 마음먹고 찾아봤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손에 넣지 못한 경우다.

  한참 동안 법정 스님의 책에 빠져있을 때는 법정 스님이 쓴 최초의 책 나누는 기쁨이라는 책을 찾고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국을 찾아다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매우 작은 소책자인 데다가 불교 서적이어서 더 구하기 어려웠었다. 출장이나 개인적인 약속을 위해 약속 장소를 찾았을 때 근처에서 우연히 중고서점이 눈에 띄거나, 때로는 불교 서적 전문점을 보게 되었을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당연히 무조건 들어가서 혹시 이런 책이 있는지 묻곤 했었다. 중고서점 거리로 유명한 곳도 꽤 자주 방문했었다. 서울 청계천이라든가 인천 굴레방다리 헌책방도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갔었다. 사고자 원하는 책을 일일이 서점마다 말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이런 곳을 방문했을 때는 내가 찾는 책을 사고자 기대하기보다는 또 다른 새로운 책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편이다. 서점 주인에게 책 이름을 말해보았지만 대부분의 대답은 ‘그런 책은 없다’였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 또한 그저 또 한 번의 시도가 추가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 발품이 있다면 온라인은 손품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인터넷 중고서점 중에 내가 찾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온라인 서점은 매우 친절한 편이다. 원하는 책이 있을 때 희망 서적을 등록해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찾는 책이 입고되었다고 한다면 친절하게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이럴 때 단 한 순간도 망설인 적이 없다. 거의 본능적으로 실시간 구매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품과 손품을 팔았을 때 대부분은 1년 정도면 원하는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간혹 1년이 넘게 되면 꽤 오랫동안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곧 내 손에 넣고 한 글자 한 글자, 문장 하나하나를 다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도 다시 또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닿을락 말락 한 높이에 달린 포도를 바라보는 ‘여우의 태도’다. 닿지 못하는 포도를 바라보면서 '아마 먹지 못할 정도로 신 포도일 것이야'라고 생각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른 책이 더 재미있겠지’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흥미 있는 내용은 아닐 거야.’

  ‘못 읽으면 말지 뭐. 죽기야 하겠어.’


  이런 생각으로 그 순간을 스쳐 지나가 버리면 그 책은 결코 두 번 다시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이 되고 만다. 평생 잊어버리면 안 되는 나만의 보물인 것처럼, 내가 읽고자 마음먹은 책은 반드시 머릿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반드시 읽고야 말리라.’

  이런 생각으로 찾고 또 찾으면,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구한 책을 대할 때는 다른 책보다도 훨씬 더 조심스럽게 책을 대하게 된다. 약간의 ‘경외심’이라고나 할까.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읽게 되고, 책을 꺼내거나 다시 꽂아 넣을 때도 나도 모르게 더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책의 경우에 책의 내용이 좀 더 머릿속에 깊이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의 도시락 문화 중에서 에키밴(駅弁)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駅売弁当(에키 우리 벤토)의 줄임말로 단어의 뜻 그대로 말하자면 철도역이나 기차 안에서 파는 도시락을 뜻한다. 이 도시락이 왜 유명하냐면, 반드시 정해진 그 시기에 그 기차역에 가야만 먹을 수 있고 숫자 또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책’이 그렇다. 반드시 그곳에서 그 순간이 아니면 결코 읽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찾고 있는 책이다. 혹시라도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책을 찾은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법정 스님의 책 중에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책이 있다.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제목만으로도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뜻이 있다. 원래는 다도(茶道)에서 나온 말로 일생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로 차를 대접할 때의 마음가짐을 뜻하는 말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책이 있다면 ‘다음에’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내가 읽지 못할 수도 있다. 0.1초 찰나의 순간이라도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절대로 망설이지 말자. '과감하게'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당연한 듯이 그 책을 꺼내어 들고 사서 읽어야 한다. 책은 그렇게 읽는 법이다.


  단 한 권의 책도 이런 마음으로 대한다고 한다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사람이든 사물이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Now or Never!

  지금은 책을 읽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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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사》    (다치바나 다카시 저, 신한, 1996년) (국내 발행본)

  이 책은 내가 7년째 구하지 못하고 있는 책이다. 결국 얼마 전에 일본 아마존에서 일어 원본을 주문해서 읽고 있다. 그리고 어설프고 짧은 내 일본어 실력으로 한 글자씩, 한 페이지씩 어렵게 번역을 해 가면서 읽고 있다. 결국 국내 발행본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고 국내에 재출간이 되지 않는다면, 혹시 누가 알까? 내가 번역자로서 이름을 올린 책이 출간될지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 한 페이지씩 일어 원서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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