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지도사의 아들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과 장례식의 풍경이 익숙했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남의 일이었기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20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한동안 웃음을 잃었을 만큼 충격이 컸다.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애착이 큰 탓도 있겠지만, 장례식이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장례식의 본질은 고인을 온전히 추모하고 유족의 슬픔을 달래는 일인데, 형식과 절차에 휩쓸려 의미가 상실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의 장례만큼은 특별하게 치러주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떤 상조 회사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까만 정장을 입은 사람들, 그들의 애도와 비애, 하얀색 국화꽃, 초가 타고 남은 매캐한 향,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알코올 냄새까지. 내가 기억하는 장례는 슬프고 어둡기만 한 의례였고, 수많은 장례식은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점쳐졌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뒤, 태어나고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이의 축복을 받고 아이가 그려낼 고유한 삶을 응원하기 위해 그 아이만의 돌잔치를 연다. 그런데 그렇게 축복받은 인간이 죽을 때만큼은 왜 사람이 아니라 의식 자체에만 집중해야 할까.
인간은 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고 축복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하얀색 국화꽃만으로는 고인의 삶을 대변하기 어렵다. 그래서 노란 프리지아, 하얀 안개, 빨간 장미 등 떠난 이가 좋아했던 꽃으로 장례식을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글로 녹여내고, 그림을 통해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 그가 지켜내고자 했던 삶, 그가 꿈꾸던 세계 등을 그리고 싶었다. 또 어떤 장르던 그가 좋아했던 음악이 가득한 장례를 상상했다. 그래서 이러한 꿈을 어떻게 실현할까 고민하며 나의 포부를 영상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