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 반항기
"엄마. 부처님이 돈 필요하시대?"
강남 한복판에 있는 큰 사찰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오는 중이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물었다. 부처님이 돈을 달라고 했느냐고.
"아니"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가 질문을 쏟아낸다.
원래 절오빠였던 남편을 위해 가끔 절에 간다.
원래 절오빠였던 남편이 2021년에 날삼재라 하여, 삼재부적이라는걸 사러 사찰에 갔다.
입춘에 즈음해 삼재소멸기도라는 것을 한다기에, 월요일이 되자마자 달려갔다.
돌아오는 수요일이 입춘이라 입춘문이라는 것도 배부한다기에 더 열을 내서 갔던 것 같다.
그걸 나도 현관 앞에 붙여보고 싶었다.
구정 즈음 현관에 입춘문을 붙이고 각 방 문 위에 노란 부적을 붙이던 친척들을 부모님은 우상숭배라 비난하셨다. 그래서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자연스레 인지하며 자랐다.
입춘대길인지 건양다건인지는 아빠가 마지막으로 중환자실에 계셨던 그해 설날에야 크게 가슴에 닿은 문구였다. 입춘을 맞이해 부디 좋은 일이 우리 집안에 들어오기를, 부디 이 힘든 시절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닿았던 것이리라. 독립해 나와 살며 만난 배울 점 많은 어른들 댁 대문마다 붙어있던 저 문구가 문득 생각났다.
'아, 겸사겸사 가서 신청하고 받아와야지.'
올해는 나도 현관에 붙여보겠다며 다짐이라는 것을 했다.
삼재업장소멸 어쩌고를 위한 신청을 하고, 삼재 부적인지 뭔지를 받았다.
그 소멸기도 인지를 뭔지를 하는 데에 찹쌀과 당사자 나이만큼의 백 원짜리 동전을 보시하라길래, 아침부터 은행에 들러 동전도 맞춰 갔다. 찹쌀은 사찰 내부에서 공양할 때 쓸 테고, 동전은 사회복지사업에 사용한다길래, 좋은 일 하며 덕을 쌓는다 생각했다.
지난 한 해는 샤머니즘 박으로 살았다.
무속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칠성의 자손인 것 같아서, 칠성전에 가서 가끔 108배도 해봤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 하면 좋은 일이 올 거라는 조상님에 대한 신뢰라는 게 좀 있었는데, 내가 얻은 건 엄지 발가락 골절이었다. 그 후로 더 이상 절은 하지 않는다. 이제 절에 가서 절을 하는 건 우리 집에서 남편과 아이가 유일하다. 가끔 절에 가서 절을 했다는 사실은 친정엄마께는 비밀이다. 우상숭배를 해서 하지 말라며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거라는 잔소리를 들을게 뻔하니까.
찹쌀과 동전 담은 봉투를 불상 앞에 잘 내려놓고 뒤돌아 나오는데 아이가 뒤를 졸졸 따라오며 물었다.
"엄마 왜 부처님한테 먹을 거랑 돈을 왜 주고 가요?"
일곱 살 어린이에게 삼재라는 걸 설명해 주기도 그렇고, 대충 얼버무리기엔 뇌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지 못한 엄마라 결국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삼재. 띠. 사주.
교회에서는 이 모든 걸 다 미신이라고 했다.
네 띠가 무엇이냐 묻거든 예수님 띠라고 하라 했던가.
인생의 모든 길흉화복은 유일신 안에 있으니, 우리는 충성되게 믿고 신앙을 잘 지키면 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사신 부모님의 자녀로서 그렇게 자란 나는, 사주를 볼 줄 안다.
결혼할 때 궁합 따위도 안 본 내가, 임신을 해서 사주 명리 공부를 했다.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절이나 철학관에 가서 사주를 풀어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영주 어느 오래된 절에서 이름을 지어왔다는 남편의 이름을 보면, 저 남자와 저 집안에 내 새끼의 이름을 맡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사주를 배워 짓겠다 선수를 쳤다. 그리고 결국 내가 지었다.
출산 가방에 옥편과 아이 이름 짓는데 참고할 작명 책 세 권을 들고 입원한 여자가 나였다.
친정 부모님은 성경적인 이름을 짓지 않았다는 사실에 서운해하셨고, 시부모님은 애 엄마가 제멋대로 지은 이름이라는 사실에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내가 지은 아이의 이름은 어느 철학관에 가지고 가도 평균 이상으로 잘 지은 이름이라는 평을 듣는다. 아이를 담당했던 선생님들마다 아이의 이미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말도 듣는다. 역시 아이의 이름은 그 아이의 이름을 가장 오래 불러줄 부모가 지어주는 거라는 친구의 말이 맞았던 것 같다.
아니, 사주라는 게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내가 암에 걸리던 시절의 대운과 세운을 보면, 딱 뭔가 죽음에 가까운 어려움을 만나는 시절이었다. (사실 암 수술 전에 차가 전복될뻔한 사고를 당했었다. 아빠 계시던 병실에서 밤샘 간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길에, 건너편에서 차선을 넘어 달려오던 택시를 피하다가 지하차도 공사중이던 공구로 구를 뻔 했었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 자리가, 아이는 모친 자리가 상대를 죽이는 힘을 가진 걸 보고서 생각했다.
결혼할 때 사주를 봐야 했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내가 더 살기 위해서라도 더 나은 삶이 되도록 좋은 습관을 들여 개운을 해야한다고. 좋은 습관을 들여 더 나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게 가장 확실한 개운법이라는걸 배워 알면서도, 심란한 밤이면 온갖 무속 유튜브들을 찾아본다.
문득 "한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복"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불신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기 위해 교회에 오고 세례를 받은 남편은, 첫 성찬식에서 성찬상을 보며 "저거 뭐야? 만두야?"라고 물었더랬다. 그 안에 든 게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빵이고, 포도주스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이 아니며,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여정은 상대 민족에 대한 학살로만 볼 수 없고, 사실은 다 같은 교회인데 교단이 어마 무시하게 많아서 다 같지는 않다는 것까지 설명하며 산지 8년째다.
같이 대예배를 드리면 설교의 절반 이상을 남편은 알아듣지 못했다. 분명 우리말로 쉽게 풀어주신 설교였음에도, 교회 안에서만 사용하는 '교회어'가 아직은 남편이 알아듣기엔 무리였다고 판단했던 날이었다. 믿음을 가지면 다 알게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는, 모태신앙인 내가 듣기에도 폭력적이었고 너무나 비 이성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원래도 신앙생활에 시니컬했던 사람이 더욱 냉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복이라는 게, 크게 의문을 갖지 않고 기존에 자리 잡은 울타리 안에서 살면 되는 편안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진짜 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나도 좀 까칠함을 숨기고 교회 안에서 연애를 잘 했더라면, 인생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과연 그랬을까.
지금은 캐나다에서 아이들 낳고 잘 사는 친구가 교회 안에서 연애를 하다 어려움에 처한 일이 있었다.
그 둘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니나, 그 오빠가 내 친구를 두고 꽃뱀이라며 소문을 내고 친구의 집에까지 협박편지를 보내는 등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하필 그 남자가 내 대학원 선배이기도 하고 그 여자가 내 친한 친구여서 가운데서 나만 들볶였다.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자, 남자가 문제라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그 오빠와 같은 소그룹에 있는 오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심리치료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오빠들의 의견은 한결같았다. 열심히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그중 한 오빠가 수도권 어딘가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가끔씩 그 시절 생각이 난다. 과연 자신의 목회를 시작한 지금도 그런 생각일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끔, 신앙 안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는 복을 나는 왜 받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 때면 이런 답에 닿곤 한다. 어차피 태생이 반골 기질인 나에겐 어불성설이었다고.
집으로 돌아와 서랍에 물건을 정리하다 손에 혼서지가 잡혔다.
집에 함이 들어오고, 부모님은 혼서지부터 찾아보셨다.
그게 뭐라고 저리 중요히 여기시나 싶었던 나는 결혼 후 한동안 서랍장 여기저기로 되는대로 보관을 했었는데, 그걸 본 남편이 한번 크게 화를 냈다. 뭐라고 쓰여있는지 읽을 줄도 모르면서, 그 소중한 걸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절에서 받아온 입춘문을 보며 문득 혼서지와 다를 게 뭘까 싶었다.
혼서지도 입춘문도 사실은 예부터 내려오던 관습이다.
이건 중요하고 저건 미신인가.
기준은 무엇일까.
남편이 퇴근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밤이다.
남편에게 새로 받아온 날삼재 부적을 전해주니 진심의 눈빛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한다. 오늘 그 큰 사찰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하며, 동네 농협보다 사찰 물품판매하는 곳이 2천얼마 가량 찹쌀이 더 비싸더라는 말 따위를 하고 있는데, 아이도 말을 더했다.
"아빠, 부처님이 동전 필요하대요."
그냥 불자로 살았어도 잘 지냈을 남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삼재 소멸 어쩌고를 하려면 찹쌀이랑 동전을 가져다 보시를 하라길래 하고 왔다고 설명을 해줬다.
기독교 기관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터질 때마다 내가 내쉬던 한숨 같은 걸 남편이 내쉬며 말했다.
"어휴, 왜들 그러냐."
그러게 왜들 그럴까.
부처님에게 돈이 필요하냐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부처님은 돈이 필요하시지 않아. 사람들이 필요한 거지."라고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사실은 거기에 더해 "예수님도 마찬가지야."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어린아이에게 더 깊이 설명해 줄 자신이 없었다.
언제였던가.
법문이 참 세련된 어느 젊은 스님이, 불자들을 위해 삼재 부적을 쓰라기에 쓰기는 하지만 사실 스님 당신은 삼재가 언제였는지 그게 뭐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더라는 법문을 들은 게 생각나는 밤이다. 그 법문의 핵심이 아마, 지금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던가.
입춘문은 과연 현관에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좋은 기분으로 좋은 일 있으라고 붙여놓고, 정초부터 일 년 내내 친정엄마와 싸울게 불 보듯 뻔하다. 사실 좋은 일이라는 건 뭔가 푸닥거리를 해서 오는 게 아니라 가족 안에 이미 있는 평화와 행복을 보고 찾아오는 것 아니던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의심 많은 사람은 또 생각이라는 걸 한다.
대체 그 우상숭배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사주와 띠를 보는 건 우상숭배이고 에니어그램이나 MBTI는 우상숭배가 아닌가.
전통을 존중해 격식 있는 예식을 치르는 건 당연한 거고, 예전부터 입춘마다 하던 전통은 우상숭배인가.
무당이 방울을 들고 방방 뛰는 것과 방언 기도를 한다며 단체로 모여 왕왕 왕왕하는 건 무엇이 다른가.
용하다는 곳을 찾아가 앞날의 일을 점치는 것과, 예언의 은사를 찾아 이곳저곳 헤메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헌금과 보시는 무엇이 다른가.
교회다니는 사람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묻는건, 신앙일까 무지일까.
대체 그 기준은 무엇인가.
뭐긴.
그냥 코에 걸고 귀에 거는거지.
상지 : 商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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