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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24. 2021

방송은 일단 타고 보는거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기엄마의 투병일기

그날은 새벽같이 KTX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하루 종일 촬영을 했다. 5 정도 나오는 방송이라는데,  5분을 위해 하루를 통으로   셈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런 기회가 어디 쉽게 오는 것이던가.


사실  투병을 하며, 독박 육아와 독박 항암을 하는 일상에 내가 느끼는 사회적 문제를 담아 투병일기를 꾸준히 연재하는 동안  번의 방송 제의가 들어왔었다. 물론 번번이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남편과의 갈등 혹은 시부모님에 대한 원망 같은 뭔가  자극적이고 시선을 끌만한 내용들이었다. 방송에 나와보겠다고 남편과 평생 안고  응어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 그리고 돌아가신 시아버지께 맺힌  없지만은 않다지만,  식구 오롯이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투병 기간을 지나오며  역시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기에 차마 그렇게 해서까지 알려지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

단체에 방송 제의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찍는  좋을  같다고 제안을 했으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우리를 지나가는 눈물바람용 가십거리로 이용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환우의 사회복귀 시점이 다른 이유를 묻는 피디를 붙잡고 아침부터 구구절절 설명을 해댔다.


촬영을 마치고, 이제 모든  우리 손을 떠났다며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된 날짜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돌아왔다.

우리 집에는 티브이가 없어서 노트북을 켜고 온에어로 방송을 지켜봤다. 혹여나 우리의 바람대로 방송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혼자만 먼저 봤다.

이런 검열형 인간 같으니.


처음 시작이 "젊은 유방암"으로 시작을 했어서였을까. 아니면 대표와 함께 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젊은 유방암 경험자여서였을까.

사람들은 우리를 '여성'만의 암을, 그중에서도 '유방암'만을 이야기하는 단체라고 짐작해버린다. 특히 누구보다  이해해   같았던 지인들로부터 나이 들어 암에 걸린 '언니'들도 잊지 말아 줬으면 한다 라던가, '유방암' 암이냐 라던지,  '젊은 여성'들만 억울하다 하는  역차별이 아니냐는 오해 섞인 말을 들으면 어찌나 억울하던지.

우린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고, 비영리 단체라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날 동안 외쳐야 할까 싶은 날들이 많고도 많았다.


방송이 나왔다.

"국가등록 암통계를 보면요, 암 진단 이후에 5년 넘게 생존한 암 환자가 2017년 기준으로 백만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를 하게 되면 생존율이 높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젊은 암 환자의 경우에 투병 기간 중에 경력단절과 재발 가능성이 높아서 암 치료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죠. 치료 기간이 워낙 길기 때문에 그럴 텐데요. 그래서 오늘은 암 환자들이 치료 후에도 재활을 받는다든지 재취업을 지원받는다든지 일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을 다녀왔는데요. 어떤 곳인지 한번 만나보시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주고받은 도입부 멘트부터 감동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영상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젊은  환자가 처하는 복지사각지대의 현실.

치료 이후의 .

요원한 사회복귀.

일상을 지키는 것의 어려움.


사단법인 쉼표, 우리가 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 5분여의 영상 안에  녹아져있었다.

주변인들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걸 제대로 알아주는 것 같아 눈물 나게 고마웠다.


" 그거 요즘은 개나 소나  걸려."

"걸려도  죽어."

암환우들이 듣는 언어폭력 중에  상위에 걸리는 말들이다. 정말 상처가 되지만 사실 틀린말은 아니다.

맞다.

살면서 교통사고    겪는 사람 없는 것처럼 이제는 암도 그러하다. 암에 걸려도 조기에 발견하면, 요즘은 약이 정말 좋아서 죽지도 않고  산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드라마에서 보는  같은  환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관념에 맞추려는 폭력을 가한다. 어쩌다 보니 젊은 나이에 암을 겪었을 뿐인데, 여러 의미로 병력이 주홍 글씨처럼 남아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있는  인생의 발목을 잡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생존이 걸린 현실을 사는데, 여전히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은 구구절절 애달프고 가슴 아픈 투병기를 소재 삼아 누군가의 힐링과 눈길과 손길을 멈추게 하는 소재로 이용한다. 그뿐이다.


점점 아픈 청춘이 늘어나는데, 달라지는  없다.

그래서 더욱 현실을 이야기하고,  나은 삶을 만들어갈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주변에서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러다 보면 다들 이해해 주는 날이 오겠거니 생각했더랬다.


생각보다  순간이 빨리 왔다.

감동이다.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며 여러모로 정신없는 요즘이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로 둬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저녁 내내  5분짜리 영상을 보고 다시 보고   본다.

오늘 밤은, 어째 이러다 잠이   같다.

너무 행복한 날이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의 암투병기 <아기엄마의 투병일기>는, 암을 극복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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