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Sep 21. 2021

효도에도 때가 있다

명절에 친정엄마와 호캉스 가던 큰 며느리

다른 계획이란 건 없었다.

늘 그랬듯이 서울시내 안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서 친정엄마를 모시고 호캉스를 즐기다 친정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이를 만나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게 이번 추석 명절의 일정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 계획은 내가 연휴 첫날 새벽부터 응급실에 오면서 어그러졌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사실 이번 연휴에 마무리하려고 미뤄놓은 일들이 더 남아있었는데, 위경련과 장염이 찾아와 병든 닭마냥 시름시름 앓는 꼴로 호캉스는 무슨 얼어 죽을 호캉스.

시어머니의 아들과 손녀가 시어머니 댁에 가기로 한 날이 오기 전까지, 남편의 병수발을 받으며 끙끙 앓았다. 그래도 남편이 한 솥 끓여놓은 죽과 응급실에서 받은 약 덕분에 이제야 기운을 차렸는데, 이번엔 같은 응급실에 보호자로 와 앉아있다.    



호캉스는 어그러졌어도, 아팠어도 명절 당일에는 친정에 가야 했다. 호캉스 다녀와서 만들어 먹으려고 사다 놓은 전감을 꺼내 챙기는데 전화가 들어왔다. 코로나 백신 2차 교차접종을 맞으신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엄마의 연락이었다.

친정으로 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혈압계에 잡히지 않고, 넘어지셨고, 어지럽고......... 같은 말 반복.

일전에 뇌졸중 의심으로 온 가족이 초 긴장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이석증이라고 했다가, 좀 더 큰 병원에서는 뇌졸중이 의심된다고 했다가, 결론은 뇌 경동맥에 문제가 생긴 경우였는데, 매일 안부인사를 빙자한 화상통화를 하며 엄마의 얼굴을 관찰했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린다.

민어 전감이 아직 냉동실에 있는데, 손도 못 대고 있는 뭐 이런 명절이 다 있나 싶은 찰나.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아프시대. 그래서 오지 말래. 내가 약기운에 취해서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말을 듣던 남편이 말했다.

“일단 백신 맞으신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1339에 전화를 걸어봐.”​

1339에서 119, 119에서 지역거점병원, 그다음은 나.

질병관리청 콜센터의 조언대로 지역거점병원 문의까지 마치셨고, 백신 부작용이 의심되는 고위험군 환자인 엄마는 119 구급차를 타고 혼자 응급실로 가셨다.

"너도 아프니까 응급실에 오지 마. 황서방 알면 애 데리고 따라올 테니 얘기하지 말고."

병원에 오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병원이라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

지름길로 가로질러 걸어가는 중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차례를 마쳤고 아이 밥도 먹였으니 바로 병원으로 오겠다는 연락이었다.

어머니 쉬시는 날이니 진득하니 있다 오라고 답을 했더니 남편이 벼락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그러느냐는게 그 남자의 논리였고,

와봤자 응급실 대기실에서 아이랑 고생만 할 텐데 진짜 응급한 상황이면 연락할 테니 그때나 오라는 게 내 논리였다.

역시나 응급실은 시장통이었다.

환자가 앉아 대기할 공간도 부족해서 보호자들은 전부 밖으로 내쫓기는 그런 상황, 운 좋게 자리 차지하고 앉아 생각했다.

모녀가 번갈아가며 응급실에 오는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엄마 곁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럴듯한 호텔에서 친구분들께 자랑하실만한 추억은 만들어드리지 못했지만, 모두가 민족 대이동을 하는 시기에 엄마 혼자 응급실에 보내 놓고 먼 곳에서 마음만 졸이고 있지 않아서 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 이냐고.


나는 아이의   이후부터 명절에는 남편과 아이만 시댁에 보내기 시작했다.

분유도 모유도 뗐으니 내가 없더라도 남편도 시댁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충분히 아이를 케어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혼자 아이를 어떻게 돌보냐며 학을 떼던 남편은, 인근에 계시는 친척 어른들 댁 순회공연을 다녀왔었다. 제법 할만했던 거지.

결국 내 판단이 옳았다.

그 후로 나는 명절마다 친정에 갔고 남편은 아이와 시댁에 갔다.

고집 세고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해 이미 포기한 큰며느리여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암투병 중에 친정아버지를 여읜) 외동딸인 큰며느리와 명절을 홀로 맞이해야 하는 안사돈에 대한 시어머니의 측은지심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명절이면 남편과 아이만 시댁으로 보낸 지 벌써 6년째이다.

그 6년 동안 “우리 가족이 명절을 보내는 법”을 듣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갖 우려와 질책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며느리가 그러면 안된다.

남편이 너무 착한 거다.

그걸 그러라고 하는 친정부모님이 잘못 가르치시는 거다. ​


남편이 착하고 좋은 사람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효도에 때가 있는 것처럼, 효행에 우선순위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딸 하나뿐인 게 무슨 죄라고 명절을 혼자 맞이하고, 가족 내 돌봄 우선에서도 밀려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던 시절, 가끔 엄마가 밥을 사주며 달래주던 경리 이모가 있었다.

그 이모가 일을 관둔 이후에도 종종 연이 닿았던 것 같았는데, 어느 날엔가 엄마를 통해 사연을 알 수 있었다. 외동딸인 경리 이모는 결혼 후 매 명절마다, 제사 이후마다 울었다고 한다. 홀로 친정을 지키고 계실 친정엄마가 가슴에 사무쳐서 울고, 아파도 사위한테 폐가 될까 숨기시는 모습에 죄스러워 울고, 친정아버지 제사가 있음에도 시댁행사로 챙기지 못해서 울고 슬퍼했다고 했다. 똑똑한 여자인데, 남편과 같이 맞벌이를 하며 자식 키우고 시어머니 봉양하며 살던 참 착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계시는 친정엄마 챙기는 일에 죄스럽고 눈치를 보던 그 안타까운 이모에게서 엄마는 내 미래를 읽었다고 하셨던가.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몰라도, 나는 적어도 내 부모 챙기는 일로 죄스럽지는 않다.


여기가 탈레반도 아니고, 내가 딸이고 며느리인 것이 왜 계급 하락으로 이어진단 말인가.



이 글을 쓰는 사이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호텔 예약을 진행하고 취소한 사이트에서 새로운 여정이 잡혀있느냐 묻는 내용이었다.

글쎄다. 엄마를 모시고 또 다른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흔을 넘기시며 점점 급격하게 연로해 지심이 보여 더더욱 불안해지는 것 같다.

그럴수록 나는 지금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부모님이 내 손을 잡아 의지하실 수 있는 때가 영원하지 않음을 느낀다.

효도에 때가 있듯 효도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일까.

내 부모에 대한 효도는 내가 하는 것이다.


효도에는 때가 있다.





<명절에 친정엄마와 호캉스 가는 큰 며느리>를 포함해, 그간 브런치와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출간을 했습니다.

시중 서점에 등록되는데 시일이 좀 걸리네요.


명절을 맞이하며, 명절 며느리 도리로 마음이 힘든 지인 분들께 추천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