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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05. 2023

단골

나란 사람,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뭣에 씌였는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는데 굳이 칠판이 안보인다 우겨서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게 안경잽이가 된 시초였다.

서울생활하면서 어찌어찌 손님과 안경사로 인연이 닿았는데 이후로 20년 넘게 단골이다. 정직하고 성실한데 묵은지처럼 진국인 사람이다.


비슷한 연배다보니 자식 크는 얘기며 세상 바뀌는 소식 나누면서 같이 늙어 간다.

한때 독립해서 안경점을 차릴까 말까 고민도 들어줬고 내밀한 안경 관련 이야기도 나누다보니 몇 마디 안해도 믿고 맡기는 단골이 됐다.

그동안 그는 안경점 네 군데 정도를 옮겨다녔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어디든 옮겨간 매장을 찾는다.


지난 주, 제 2의 눈으로 여겨 누구 못잖게 세심하고 조심히 다루는데 어쩌다 렌즈 테두리가 깨져버렸다. 필시 술 취해 평소와 달리 그냥 던져 놔서 그랬던 모양이다.


주문한 렌즈가 도착했단 문자를 받고 오늘 일찍 퇴근해서 멀리 있는 매장에 나왔다. (내 것은 근시, 난시에 변색렌즈에 다촛점에 고굴절... 뭐 여튼 그래서 무지 비싸다. 안경은 내가 돈 아끼지 않는 두어가지 물건 중 하나다)

렌즈 테두리는 살짝 깨졌어도 거의 새 것이라 아까워서 깨진 부분 갈아내서 작은 테에 맞추고, 기존 안경테엔 새 렌즈를 끼웠더니 새 안경이 2벌이 됐다. 왠지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완성하고 나니 언듯 6시다.


"오늘은 몇시까지 근무십니까?"  

8시라고 한다.  

"반주 삼아 저녁이나 같이 하시죠. 제가 모실테니." 늘 염두에 두고 있어 작심하고 찾은 터였다.

"아휴 아직 2시간이나 남았는데..."

"상관없습니다. 응접 테이블에서 제 할 일 하면 돼죠. 소주파시죠?

"근처 자주 가는데 있으세요? 거기로 가시죠"

"갈비살, 삽겹살 괜찮은 데가 있는데... 근데 막걸리 드시잖습니까. 거기 있을래나?"

"단골가게로 가시죠. 막걸리? 그런게 어딨습니까. 술이 술이지...  소주도 좋죠."

가게를 둘러보니 맛집일게 분명한데다 딱 내가 좋아하는 레트로 분위기다.

"사장님 오늘 무슨 고기 좋습니까?"

실은 하나마나한 질문을 했다. 메뉴를 보니 제일 비싼 게 갈비살인데 (그래도 싼 편이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저희집 갈비살 좋습니다. "

갈비살 한 근(600g) 메뉴를 시켰다. 고기도 맛있는데다 우리 세대가 겪는 인생담도 깊고 융숭하다. 소주 3병, 4병, 5...


'에라이~ 내일 스케쥴? 아 몰라. 걍 묵다 죽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안뜨면 말고... 그 땐 다 함께 죽는기지 뭐. 나만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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