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맞이한 교수는 아직 세발 자전거를 타는 어린 자식의 뒷꼭지가 마냥 귀여울 수만 없다. 지금은 철부지지만 커가면서 나이 든 아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럽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 머잖아 위인전에 실릴 것 같은 김장하 선생은 스스로를 "한약방에서 머슴을 살았다"고 했다. 그 젊은 머슴이 18살에 한약사에 합격했다. 뒤늦게 미성년임을 알게 된 당국이 이듬해에 면허를 줬다고 했다. 흑백 사진 속, 젊다못해 어린 그는 30대로 보인다. 일부러 가르마를 타고 정장을 입었다고 했다. 한약사, 직업상 나이가 들어보여야 했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30대에 학교 이사장을 한 그는 인생을 앞당겨 살았다. 평생 일요일을 빼고는 쉬어본 적이 없던 그가 한약방 문을 닫았다. 일흔 아홉,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되어서야 하는 은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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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학 전, 아버지 학교 운동장 철봉에 매달려 자주 놀곤 했다.
"일마 이거 누꼬? 완전 붕어빵이네.. 너거 아부지 ㅇㅇㅇ맞재" 코밑이 거뭇한 아저씨 한 무리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네도 밀어주고 목말도 태워주며 한참을 놀아주던 그 아저씨들은 아버지의 제자인 고등학생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의 고교 시절은 철부지 그대로였던 것 같다. 아저씨인 줄 알았던 그들과 같은 나이였을텐데 말이다. 다 커서 찾은 모교 운동장이 손바닥만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숨이 턱에 차도록 한참을 달려야 했던 넓은 운동장이었다.
<서른 즈음에>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돌아 볼 경황이 없었다. 연인과 아카시아 이파리 떼어내는 놀이하듯 쉽고 무심하게 하루 하루가 멀어져 갔다.
그랬던 청춘은 지나가는 소낙비처럼 우루루 내렸다 금새 그쳤다.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인 줄도 몰랐다. 그래선지 김광석은 영원히 30대 머물렀다.
몇 년전 독서모임에 한 박스의 책이 도착했다. 하필이면 <마흔에게 /기시미 이치로>였다. '하필이면'은 그때 나는 이미 쉰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깨지고 자빠지며 헤맨 후에야 어렴풋이 보이는 길, 늘 깨달음은 후회와 손 맞잡고 뒤따라 오는 것만 같았다.
50대는 어중간한 나이다.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못했다. 되돌아 가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그 끝은 여전히 가늠이 안된다. 배낭을 채웠던 짐은 덜어냈을텐데 어깨는 더 굽은 것 같기도 하다.
나이들어 보이고 싶었던 젊은 날이 있었고, 동안이란 말에 으쓱했던 시절도 지나왔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이가 된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세상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50대에 이르러 가끔은 회오리치며 세차게 음료수 병을 빠져나가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착각과 두려움에 사로 잡히곤 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연장됐다지만 실은 자동차의 폐기 연한이 늘어났다는 소식과 다를 바 없다. 굴러다니는 시간보다 정비소를 더 자주 들락거리는, 아무리 엑셀을 밟아도 rpm혈압만 오르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안한 자동차를 반기는 세상은 없다.
뽀마드로 가르마를 타고 정장을 입은 젊은이와 내복을 벗어버리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노인들이 드물지 않은 시대다. 그래도 여드름은 감추기 어렵고 무릎은 시리기만 하다.
지금까지 육체로 나이를 먹었다면 이제부터 영혼의 나이로 세기 시작해야겠다. 움켜쥔 모래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간 내 30대와 40대를 그렇게라도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