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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05. 2023

여의도 S사

첫 프리젠테이션에서부터 강조한 건 오브제 역할의 커다란 메스가 압도하는 첫 인상, 채광을 최대한 들이고 시선을 쫓아가는 레이 아웃과 코어의 중앙 배치였다. 결론적으로 주효했고 우리 디자인이 채택된 주된 이유가 됐다.

물론 심사에 팀장급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도움이 됐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만장일치라고 했다. (다수결 투표결과에 서로가 놀랐다고 했다. 왜냐면 내 인상이 디자이너로서 고집도 엿보이고, 만만찮은 성격같아서 같이 일하는데 까다롭겠다는 우려가 많았는데 결과가 예상 밖이어서...

익히 들어오던 바다. 그런 우려가 신뢰와 찬사로 바뀌는 게 더 드라마틱하긴 한데 반대로 나의 단점이기도 하다. 바뀌기 어려운....)

최근 아니 꽤 오래전부터 지향하는 사무공간의 특징이라면 효율적이고 유동적인 공간활용, 쾌적하고 머무르고 싶은 근무환경이 아닐까 싶다.

핫 테스크와 다양한 배치가 그렇고, 휴식과 재충전을 배려한 공간 할애 또한 그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전면 유리로 된 주출입구를 통해 모서리가 라운드 처리된 우드로 깜싼 직원 휴게실이 보인다.

시그니처가 되는 오브제를 겸한 장소인데 긴 바 테이블이 놓여진 라운지처럼 디자인 했다. 출근해서 업무에 돌입하는 직원들을 부드럽게 인도하고 회사를 조금을 편안하게 느껴졌으면 하는 의도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게 마련이다.

차 한잔으로, 수다로 업무의 긴장을 해소해야 집중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신념 비슷한 걸 가지게 된 지는 한참 됐다.

이 공간은 업무공간과 차단되어 내방객과의 가벼운 미팅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허들이라면 도식적이거나 완고할 수 있는 윗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일텐데 중앙 휴게실 전면 벽이 이미지 월이 되고, 개폐 가능하게 해 회의실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다행히 15년동안 쓰던 이전 사무실과는 다르게 밝고 모던한 사무실이길 바랬던 경영진의 의중과도 배치되지 않았기에 무난하게 설득됐다.

"세가지 컬러만 쓰겠습니다. 화이트, 그레이 그리고 브라운(오크)" 선언하듯 통지했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흑백 TV에 절절했던 세대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던 '김일의 박치기', 여물지 않은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던 '여로'가 그랬다. (동갑내기 주인집 아들의 비위를 맞춰야만 볼 수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컬러로 바뀐지는 오래됐지만 TV는 여전히 학교 앞 문방구의 불량식품이다. 하물며 배우의 피가 흑백시대 초코렛이었다가 빨간 설탕물로 바뀐 것만 봐도 그렇다. 달콤하지만 그리 자주 먹어 좋을 게 없지 않은가.

꼭히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포인트 컬러를 써야만 하거나 컬러가 주효한 공간이 아닌 오피스에 다양한 컬러는 '개발에 편자'일 때가 많다.

사실을 말하자면 디자인에서 색채는 요술을 부리기에 적합한 언어다. 눈을 현혹시키기에도, 눈길이 안갔으면 하는 부위를 감추기에도 그만한 것이 없다. 인간의 감각은 단순하고 딱 떨어지는 형상에서 더 예민해지기 마련이니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월리를 찾아라>가 어려운 데도 현란한 색채가 한 몫 한다.

시대가 시대다보니 3D작업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가 많다. 그럴 때마다 고장난 테이프 돌듯 하는 말이 있다. "네. 어렵지 않습니다. 제겐 가장 쉬운 사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진심이다.

인간의 신장이나 시선과는 무관한 최적의 구도, 자연 채광과 인공 조명을 자율 자재로 조절한 빛 그리고 재료의 물성과 질감은 아직 어떤 그림으로도 표현 불가능하니까.

오히려 나는 상대가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머리 속에서 3D시뮬레이션을 돌리게 해주는 것이다. 이유를 설명하고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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