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May 16. 2024

불친절한 이유

"왜 여기가 좋습니까? 이전 사무실이 훨씬 넓고 신축건물인데... 엘리베이터도 있고"

"뭐랄까. 거긴 사람을 밀어내는 것 같았거든요."

'밀어내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최근 사무실 이전을 하고 친구와 나눴던 대화 중 일부다.


20년동안 세들었던 사무실을 정리하며 얼추 책 2천여권을 정리했다. 책이라고는 하지만 건축과 디자인 관련서적이거나 매거진이었다. 내가 그림책이라고 부르는...

가장 부담스러운 짐이기도 했지만 이제 소용이 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장하면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점심값 아껴 장만한 비싼 외국 서적들이었다. 시집이나 에세이, 소설같은 단행본은 남겼다. 이미지를 버리고 문자는 선택한 것이다.


이미지는 시각에 의존한다. 시각은 감각의 하나로 80%의 비중을 차지한다.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은 거의 전적으로 이미지에 의존한다. 아니 그렇다고 오랫동안 믿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디자인 작업에 착수하거나 구상이 막히면 그림책이 아닌 문자책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건축이나 디자인과는 전혀 무관한 책이었다. 문장에서 모티브를 찾고 글의 전체 맥락에서 구도를 잡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책 정리 기준이 그때 섰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건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다. 한참 늦게 시작한데다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독서라서 문해력이라도 키우려는 의도가 그 중 하나다. 얼핏 문해력은 읽어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내 경험상 쓰는 게 더 효과적이다.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가 청각의 이상을 지적하는 게 아니듯 문해력이 딸린다는 말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근 들어 문맹률에 있어서는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문해력이 자주 들먹여진다.

문해력은 비교적 장문의 글을 맥락에 맞게 행간을 놓치지 않고 쫓아가서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작용 중 하나인 문해력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시각화와 상징화가 그것이다. 시각화는 감각을 동원한 이미지이고 상징화는 이미지에서 생성된 기억과 상상이다. 생각은 이미지가 아니라 문자나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문해력은 문자를 논리적으로 배열한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인 것이다. 문자가 아니라 문장이다.


이미지가 결합된 시나 이미지가 중첩된 은유까지 해석해서 함축된 의미에 도달해야 비로소 문해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해력이 떨어진다고해서 무식하거나 못배웠다고 할 수 없지만 영민하다거나 지혜로울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사람에게 깊이와 품격까지 바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시각, 이미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을 한다. 그런데 예술이 그러하듯 디자인 작업의 생명력와 완결성은 관련된 사물의 실체와 상상력 사이에 존재한다.

상상력은 이미지 다음 단계인 문자나 언어로 상징화된 생각이다. 문장 한 줄에서 착상을 하고 책 한 권에서 전체 구조가 더 잘 잡혀서 그림책을 처분한 것이다.


흔히 문해력을 키우려면 단어와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  많은 문장을 접해야 한다고 한다. 독서의 중요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학창시절 공부도 마찬가지지만 읽어서 기억에 남기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노트가 새까매지도록 적어야 겨우 외워지듯 문장을 계속 써봐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비교적 장문의 글을 쓰려고 한다. 손님을 가려받겠다는 고약한 심사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미진한 문해력을 이렇게라도 길러보려는 의도가 훨씬 크다.

작가의 이전글 꼴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