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다
서른을 꽉 채워갈 무렵 나는 독립했다.
은행에게 많은 부분을 기댄 오피스텔이지만
7평 남짓한 공간의 어엿한 세대주가 되었다.
어엿함에 취한 첫날밤.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너’를 마주한다.
내가 기억하는 너와의 첫 만남은 그날이었다.
어머니께서 꼭 잡고 있던 나의 손을
유치원 담임 선생님의 손에 넘겨주었을 때 말이다.
너는 나의 뒤에서 살며시 다가와
“어흥”하고 놀랬켰고,
희미한 기억이지만
난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기억은 대학 기숙사를 처음 들어가는 날이었다.
마지막 이삿짐을 짊어진 나를 내려두고,
먼 길을 되돌아가는 아버지의 차를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너는 불현듯 찾아왔고
나의 눈물을 보고 갔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세 번째 만남이 찾아왔다.
흐느끼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연병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기던 그때였다.
그때 너는 세찬 돌풍 같았다.
순식간에 불어 닥쳤고, 사라졌다.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울타리를 벗어날 때면
언제나 너는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너를 마주할 때면
나는 줄 곧 울었다.
너는 누구일까.
혼자라는 외로움.
무게가 가늠이 안되는 책임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연함.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
그것들이 너였으리라.
어엿함에 취한 오늘 밤.
다시 너를 마주한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다르다.
너는 똑같지만 내가 다르다.
이전의 만남과 달리
네가 사뭇 반갑다.
한 치 앞 정도는 볼 수 있게 커버려서 일까.
나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서 일까.
너의 등장과 동시에
나는 내 안의 어떤 단단함을 느꼈고
왔다가는 너를 반갑게 배웅했다.
그리고 내 눈의 눈물은
더 이상 없었다.
네가 나를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네가 다시 찾아올 사건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내가 새로운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그 날.
나를 지키던 울타리가 더는 세상에 없는 그날.
너는 올 것이다. 여태 그랬으니까.
세월이 흐르며 여러번 ‘너’를 만났고,
나는 매번 울었다. 그리고 점점 변했다.
눈물의 양은 줄어들다 멈췄고,
지금은 오히려 너를 반가워하고,
심지어 웃으며 떠나보낸다.
네가 다시 찾아올 그 날에
난 한층 더 단단해져 있으리라.
눈물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흘리겠지만
굳건히 너를 만나고,
담담히 너를 떠나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