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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타힘 Apr 05. 2021

독립

홀로 서다

서른을 꽉 채워갈 무렵 나는 독립했다.


은행에게 많은 부분을 기댄 오피스텔이지만

7평 남짓한 공간의 어엿한 세대주가 되었다.


어엿함에 취한 첫날밤.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너’를 마주한다.



내가 기억하는 너와의 첫 만남은 그날이었다.


어머니께서 꼭 잡고 있던 나의 손을

유치원 담임 선생님의 손에 넘겨주었을 때 말이다.


너는 나의 뒤에서 살며시 다가와

“어흥”하고 놀랬켰고,

희미한 기억이지만

난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기억은 대학 기숙사를 처음 들어가는 날이었다.


마지막 이삿짐을 짊어진 나를 내려두고,

먼 길을 되돌아가는 아버지의 차를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너는 불현듯 찾아왔고

나의 눈물을 보고 갔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세 번째 만남이 찾아왔다.


흐느끼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연병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기던 그때였다.


그때 너는 세찬 돌풍 같았다.

순식간에 불어 닥쳤고, 사라졌다.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울타리를 벗어날 때면

언제나 너는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너를 마주할 때면

나는 줄 곧 울었다.


너는 누구일까.

혼자라는 외로움.

무게가 가늠이 안되는 책임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연함.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

그것들이 너였으리라.



어엿함에 취한 오늘 밤.

다시 너를 마주한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다르다.

너는 똑같지만 내가 다르다.


이전의 만남과 달리

네가 사뭇 반갑다.


한 치 앞 정도는 볼 수 있게 커버려서 일까.

나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서 일까.


너의 등장과 동시에

나는 내 안의 어떤 단단함을 느꼈고

왔다가는 너를 반갑게 배웅했다.


그리고 내 눈의 눈물은

더 이상 없었다.



네가 나를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네가 다시 찾아올 사건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내가 새로운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그 날.

나를 지키던 울타리가 더는 세상에 없는 그날.

너는 올 것이다. 여태 그랬으니까.


세월이 흐르며 여러번 ‘너’를 만났고,

나는 매번 울었다. 그리고 점점 변했다.


눈물의 양은 줄어들다 멈췄고,

지금은 오히려 너를 반가워하고,

심지어 웃으며 떠나보낸다.


네가 다시 찾아올 그 날에

난 한층 더 단단해져 있으리라.


눈물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흘리겠지만

굳건히 너를 만나고,

담담히 너를 떠나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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