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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누 Jul 20. 2023

마당 밖을 나온다고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외국 땅을 밟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마음 한편에 짐이 되었다. 재외교포나 학창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너무 편협하고 좁게 느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외살이에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재학 중 코이카 프로젝트의 단원으로 선발되어, 처음으로 해외에 거주하게 되었다. 내가 파견 나간 곳은 네팔의 작은 마을이었다. 한국에서만 한평생 살아왔기에 전기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난생처음 나의 존재를 그대로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3개월의 짧은 시간에 매료되어, 해외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태국의 고속버스를 타고 작은 도시를 혼자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 쿠마모토현의 낡은 카페, 아인트호벤 외곽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기억 등. 관광객이 아닌 단기체류자의 시선에서는 이전과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나를 작아지게 했던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은 종종 나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처 없는 해외생활이 길어질수록 공허한 느낌은 더 강해졌다.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누군가와 치열한 토론,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며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었다. 틀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마주했다. 언어나 공간의 제약은 때로 많은 기회를 한정 짓지만,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키우는 것과는 무관하다.




르완다에 살면 어렵지 않게 서로 어울려 사는 작은 한인 커뮤니티를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함께 연대하며 이겨내기 위한 오래된 관계이지만, 작은 사회이기에 정체된 틀 안에서 서로 눈치게임을 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만나서 잠깐 대화를 나누다보면 몇십 년을 해외생활을 하면 더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라는 기대도 쉽사리 무너지곤 한다.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러나 그 넓어진 시야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 함께 키워지지 않는다면, 얇게 퍼진 반죽처럼 더 연약하게 찢어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 정말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관성에 힘입어, ‘안’이 아니라 ‘못’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마찰이 부재한 상황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현실에 안주한다. 끊임없이 이질적인 것을 나에게 접합하며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없으면 나는 나로 온전할 수 없다. 마당밖을 나온다고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틀 안에서든 그 밖에서든, 정체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함을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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