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이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여 타인과 차별화되는 나의 강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양극화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유튜버나 파워블로거같이 대단한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집 앞 아르바이트를 구하거나 직장에 들어가 일하기 위해서도, 나를 특별하게 포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나를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잘하는 것을 부각하여 집중하는 것보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량화된 자기소개서를 들이밀면, 커리어가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나답게 잔잔하게 살아가고 있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아프리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큰 결에서 비슷하다. 아프리카의 역사는 전 세계적 경쟁적인 패권의 바깥에 위치해 왔다. 승자의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지만 테두리를 넘어선 개념으로 자신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주자의 난초와 같다. 때로 무형의 형식은 드러난 적 없는 것으로 생명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는 1930년 발표한 그의 시에서 기술적 물질주의에 가려진 아프리카의 자유한 삶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프랑스어 원본)
Eia pour le Kaïlcédrat royal!
Eia pour ceux qui n’ont jamais rien inventé
pour ceux qui n’ont jamais rien exploré
pour ceux qui n’ont jamais rien dompté
mais ils s’abandonnent, saisis, à l’essence de toute chose
ignorants des surfaces mais saisis par le mouvement de toute chose
insoucieux de dompter, mais jouant le jeu du monde…
(영문 번역)
Eia for the royal Cailcedra!
Eia for those who have never invented anything
for those who never explored anything
for those who never conquered anything
but yield, captivated, to the essence of all things
ignorant of surfaces but captivated by the motion of all things
indifferent to conquering, but playing the game of the world...
빛이 너무 밝으면, 가려진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과 나를 비교해서 나를 드러낼 때보다 사물의 본질(à l’essence de toute chose)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릴(ils s’abandonnent) 때 나는 진정으로 나일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형태가 없다는 것은 전체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체적 의식 속에 강하게 빛나기보다 텅 빈 하늘에 흩뿌려진 희미한 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