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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누 Jul 30. 2023

나는 오늘도 불공정한 세상을 살아간다

르완다에서 물건 거래는 보통 르완다 프랑(RWF)으로 이루어진다. 르완다에서 한국 원(KRW)을 직접 환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매번 한국에서 환전한 달러(USD) 뭉치를 들고 르완다로 입국하곤 한다. 처음 르완다를 방문한 올해 초, 달러-르완다프랑 환율은 약 1080프랑 정도였는데, 7월 말 시점 기준으로 1190원을 넘어갔다. 놀라운 일이다. 르완다에서는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탓에, 외국인이고 꽤 큰 금액의 달러를 환전하는 경우 현재 환율보다 더 좋은 금액으로 협상까지 가능하다.




달러 강세는 미국 내 다국적 기업의 이익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에도 양날의 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국가 부채가 많은 소규모 국가와 신흥국들에게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가난한 나라는 미화로 더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다. 당장 생활을 영위할 돈이 없어 돈을 빌렸는데, 이자가 빠르게 올라 갚아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달러 강세는 미국 통화로 빚진 대출에 대한 지불을 더 비싸게 만든다. 더군다나 가난한 나라들은 식량, 원자재, 공산품 등을 자급자족하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물건을 수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갚아야 하는 부채뿐 아니라 현재 소비해야 하는 필수재마저 달러로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이전보다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닌 국가와 거래를 할 때에도 결국 오가는 것은 달러이므로, 달러가 없이는 거래가 어렵다. 실제로 많은 가난한 국가들이 이로 인해 심각한 경제 문제 직면하고 채무 불이행(Default) 상태에 빠지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더 빈곤한 국가와 가계에서 심화된다.


코로나19, 그리고 잇따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환율 변동과 심각한 공급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제 연료 및 식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것도 가난한 나라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IMF 발표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식품이 소비자 물가 지수의 40%를 차지한다. 식량지출이 전체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불안정한 국제정세에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글로벌한 팬더믹과 전쟁이 발생할 때마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나 대부분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 그전에 있었던 현상을 급속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수많은 불공정을 더 또렷하게 마주했다. 예컨대 우리는 히스패닉 미국인은 같은 나이의 백인보다 코로나로 사망할 확률이 12배 더 높고, 상파울루의 브라질 흑인은 백인보다 사망할 확률이 2배 더 높은 식이다 (The Economist, 2020). 개인을 벗어나 국가 단위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CPI)가 8%, 9%가 되면 전 세계 미디어가 집중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것은 가난한 나라이다.




키갈리 중심가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환전을 하는 순간에 집중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늘은 왜 한 달 전보다 더 좋은 가격에 르완다 프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국제 정세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물가가 얼마나 빠르게 오르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으면 문제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불공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예민한 자세가 해결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PS1. World Bank Group (2019)에서는 르완다 프랑 명목 화폐 가치하락의 주요 원인은 무역 적자에 다른 경상수지 적자로 설명한다.

PS2. International Growth Centre (IGC)의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르완다 프랑의 가치 하락은 수입품과 현지 물가에 영향을 미쳤지만, 기업들이 어느 정도 수입 대체효과(import substitution)를 보이고 있고, 수입업자들이 환율변동의 ‘충격 흡수장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환율 충격에 타격을 받는 수입업체는 수입 지출을 줄이고 현지 내에서 구매를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러한 충격 흡수역할로 현지 경제와 하위(downstream)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1. The Economist (2020). The year when everything changed: Why the pandemic will be remembered as a turning-point. The Economist, 19 December.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0/12/19/the-year-when-everything-changed

2. Lighting Rwanda (2019), World Bank Group

3. IGC (2023). How exchange rate fluctuations impact imports and domestic prices: Evidence from Rwanda, 1 February. https://www.theigc.org/blogs/how-exchange-rate-fluctuations-impact-imports-and-domestic-prices-evidence-rw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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