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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i Feb 21. 2019

서른 다섯, 갑상선암 투병기 #3

기다림

기다란 바늘이 목 안을 휘저으며 세포를 채취했다. 여러 번의 세침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리 여러 번 받아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기분 나쁜 통증이었다.


그리고 긴 기다림.


사법시험 2차를 치른 후 합격자 발표일까지 4개월의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침검사 후 결과를 듣게 되는 2주일은 매일매일이 피가 말랐다. 회사에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가만히 있어도 주르륵 눈물이 나기도 했다. 누군가 나에게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침검사 후 결과를 듣기까지의 시간을 선택할 정도로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의사 선생님의 표정에서 이미 답을 알 수 있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고 기도했는데, 2주간 눈물의 기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세포검사 결과는 비전형이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갑상선 유두암에서 발견되는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의 주인공이 나라니!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와중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이 하얗게 된다는 표현은 글로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정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아직 세포검사가 비전형으로 나왔으니 확진은 아니지 않으냐고 따지듯 물어보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쓴웃음뿐이었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 죽는 건지, 수술을 하면 살 수는 있는 건지, 왜 암에 걸린 건지, 대체 그 암은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하지만 한 마디라도 더 말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아무것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 이 얘기를 어떻게 엄마 아빠에게 전하지.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간다는 얘기를 미리 해놓아서 집에서는 계속 전화가 오는데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 입으로 "암"이라는 단어를 꺼낼 자신이 없었다. 울컥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목이 터져라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검사 결과를 통해 바로 "내과"환자에서 "외과"환자로 재분류되었고, 같은 날 오후에 마침 진료를 취소한 환자가 있어 외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대기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진료순서를 기다리는데 목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만 아픈 건 아니구나, 당신도 나처럼 아프구나."

그 순간에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엄마도 아빠도 의사 선생님도 아닌, 나와 같은 병으로 투병 중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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