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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i Feb 28. 2019

서른 다섯, 갑상선암 투병기 #7

수술

예정된 수술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 수술 환자의 수술이 길어지고, 수술실 스케줄이 꼬이면서 저녁 7시 30분이 넘어서야 수술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병실의 문이 열릴 때마다 수술실로 나를 데리고 가려고 온 건 아닐까 몇 번이나 마음을 졸였다. 해가 지고 나서는 혹시 하루 종일 이렇게 마음을 졸였는데 오늘 수술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드디어 나를 데리러 온 휠체어를 탔다. 엄마 아빠의 뒤따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별관 수술실까지는 가는 거리가 참 멀게만 느껴졌다.


"나 잘하고 올게. 걱정 마"


지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연습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상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의 사랑한다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빨리 수술실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 마디라도 더 말을 이으면 엄마를 붙들고 너무 무섭다고,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제 목소리가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울 것만 같았다.


수술 대기에 들어갔다. 안경을 벗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까? 뿌옇게 보이니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잠깐 자고 나면 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보았다.


수술 대기실에서 한참을 휠체어에 앉아 대기했고, 수술실로 옮겨졌다. 휠체어에서 내려 수술대 위로 걸어 올라가라고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쉽게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수술실은 드라마에서 봤었던 것처럼 온통 하늘색이었고, 수술대는 생각보다 좁았다. 억지로 발을 떼어 수술대 위에 직접 누웠다. 수술실 침대 위는 너무 추웠다. 온갖 기계들이 내 몸에 부착됐고, 수술실에 있는 십여 명이 바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제발 무사히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그리고 목소리가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마취가 시작되었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일어나라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일단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목 안쪽이 불편하고, 자꾸 졸음이 왔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를 확인해야 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수술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 목소리였다. 그제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서야 어지러움이 나아졌다.


한 시간 후 병실로 옮겨졌다. 뒤따라오는 아빠의 울먹임이 느껴졌다. 아빠는 진단부터 수술까지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수술을 걱정할 때마다 절대 안 죽는다며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울었다.


나는 진단부터 수술까지 모든 과정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 안에서 훨씬 더 성숙해졌고,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그래서 꼭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노라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틀렸다. 엄마 아빠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나는 알지 못했었다. 아픈 내가 제일 힘들 거라고, 내가 나를 제일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수술실로 딸을 들여보내야 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나는 헤아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빠의 울먹임을 듣고서야 내가 제일 힘든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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