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i Feb 25. 2019

서른 다섯, 갑상선암 투병기 #6

단단해진 마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세침 검사를 했다. 결국은 암이었다.

더 이상 나는 내 갑상선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내 갑상선에는 3개의 암이 자라고 있었으니깐.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왜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생긴 거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유전학적으로 갑상선에 암이 잘 생기는 것 같다는 답밖에 듣지 못했다.


시간이 지났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18년 12월 11일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냈다. 의식적으로 수술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수술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암수술을 하려고 절개했다가 목 안에 포도송이처럼 암 덩어리가 흩어져있어 결국 다 제거하지 못했다는 수술 후기와 연예인들의 갑상선암 수술 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후기들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수술 전 주, 금요일. 휴가 전 마지막 근무일.

오래 비워둘 책상을 닦으며 내가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와 여기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 눈물을 쏟았다.  다른 사람이 수술하는 거였다면, 나도 안 죽는다고, 죽기가 더 어려운 수술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객관적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입원 전 날, 심란한 마음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엄마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엄마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숨소리를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건강하게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의 숨소리를 올해도 내년에도 들을 거라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병원에 와서 입원 수속을 할 때쯤이 되어서야 수술은 실감이 났다.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맨 정신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흉터가 생기기 전의 목을 사진 찍어 보았다. 나는 깨끗한 내 목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수술 자국을 표시하기 위해 마크가 그려졌고, 손에는 정맥주사가 꽂혔다. 항생제 테스트를 했고, 온갖 검사를 위해 계속해서 피를 뽑아갔다. 빨리 내일이 지나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내일 수술을 집도한 담당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았다. 그는 검사 결과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수술 이후에 목소리를 거의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번 더 주의를 줬다. 그리고 내 수술은 다른 수술과는 달리 성대 신경 쪽에 가깝기 때문에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면서 수술하겠다고 했다. 그때 정확하게 왜 사진을 찍는지 물어보지 못했지만, 회진 이후 생각하니 수술 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경우 의료과실 입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직업란에 "변호사"라고 써서 의사 선생님을 심란하게 만든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7개월 전부터 계속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고지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변호사라니. 하지만 나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살아있다면, 건강하다면 나는 어떤 시련도 감당해 낼,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용기가 있었다. 지난 2년 7개월 간 나는 많이 단단해져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 다섯, 갑상선암 투병기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