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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i Feb 24. 2019

서른 다섯, 갑상선암 투병기 #5

2년의 시간

6개월마다 초음파로 크기를 추적 관찰했다. 매 번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갈 때쯤이면 혹시 크기가 자라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졌고, 크기에 변화가 없다는 결과를 들으면 6개월의 삶이 연장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평범한 아이였다. 남들보다 이해력도 암기력도 특출 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았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행복은 잠깐 포기하고 다음 단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다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대학에서는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 줄 알았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수료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었는 줄 알았고, 그래서 한창 좋은 나이인 10대와 20대를 공부만 하며 보냈다. 나는 항상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다음을 위해 현재의 행복은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어쩌면 다음은 없을지도 몰랐다. 나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미래를 위해 포기하는 시간이 아닌 행복한 오늘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퇴근한 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가죽공예라는 취미생활도 시작했고, 가족과 식사를 하는 시간도 늘렸다. 그리고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재미있지 않고 불편한 사람들과의 모임은 되도록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 몸은 건강건진 이전과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었고, 어느새 삶은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2018년 5월, 원하던 직장으로 이직이 결정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간다고 믿었다.

늘 하던 대로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익숙한 진료실, 익숙한 의사 선생님. 하지만 검사 결과를 보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불안했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어야 했다.


"수술합시다"


그는 너무나 쉽게 "수술"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갑상선에 있는 암이 자라났는데 자라나는 방향이 성대신경 쪽이고, 초음파상 성대 신경과 1m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더 이상은 추적 관찰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흔하디 흔한 쌍꺼풀 수술도 라식수술도 못할 정도로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만에 하나라는 확률이 내 일이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갑상선 암 수술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해야 했기에 마취사고 역시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더는 미룰 수가 없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점점 크기가 커지는데, 수술 중에 성대 신경을 건드리면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고, 이례적인 경우이지만 평생 아주 작은 목소리밖에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 중에 부갑상선을 건드리면 평생 신지로이드뿐 아니라 칼슘제도 복용해야 한다며 온갖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겨드랑이를 절개하는 로봇수술은 불가능하다며 목을 절개하여 수술하겠다고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바빴고, 달력을 넘기며 12월 11일을 가리켰다. 현재 가장 빠르게 수술할 수 있는 날이라며.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 나에게는 7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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