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미국 언론사의 기사를 보다가 보니,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데보라 (Deborah Copaken)라는 작가가 졸업 30주년 동창 모임에서 깨달은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 눈에 띄었다. 졸업후 30년 동안 서로 다른 각자의 길을 걷던 동창들을 보며 인생에게 깨달은 교훈들을 짧게 적어 놓은 작가의 노트 속에서 가장 진부 하기도 하지만 또한 가장 공감이 가는 항목은 '우리 누구도 정확히 예측한 대로 살아온 사람은 없었다'였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학업, 직업, 그리고 사랑.
우리는 누군가에게 첫사랑 이었겠지만, 또 그렇게 남이되었고, 내가 가진 직업은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지만, 그 또한 찰나였다.
세상이 그래서 복잡해 보이지만,
세상에는 적어도 내가 결심만 하면 가능한 것들도 의외로 많다.
우리는 그것을 소.확.행이라고 부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현재 내 소.확.행은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나는 내 딸과 포루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벨기에,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일본, 미국, 캐나다, 태국을 넘나들면서 백 여개가 넘는 도시와 마을을 함께 여행했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여행중이다.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를 살고 있다.
내가 세상을 좀 안다고 해서
내가 했던 경험대로 딸이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앞으로 아이에게 닥칠 적지 않을 시련에 대한 심리적인 안정판과 삶에 대한 좋은 기억일 것이다.
아이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어찌 없겠는가마는,
돌아보면 내가 했던 일도 부모가 강권해서 된 것이 아니었듯이, 이 아이의 선택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지난 세대의 논리의 설파를 피하고,살아남으라고 공포감을 주입하거나, 적성을 무시하고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직업을 강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을 통해 세상을 긍정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내가 스키가 무서운 운동이라고 주입 했다면, 아이는 스키를 타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서핑이 무섭고 위험한 운동이라고 했다면 아이는 물을 멀리했을 것이다.
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인간이 자유로울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말에는
내가 가진 경험과 가치관으로 부터의 자유도 포함되어야 한다.
산업화의 끝자락과 세계화의 수혜를 보던 부모의 관점에서 말하는 미래 이야기들은잘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
결국 그래서 남는 것은 내 소확행인 여행의 기억을 나누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지는 소망은 단 한가지가 있다.
아이가 편견없이 세상의 다양성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다.
돌아보니 우리세대는 사상적 억압을 경험해 왔다.
반공시대에 시험 점수 내겠다고 반공이데올로기에 줄을 그으며 공부를 했던 기억도, 한민족이라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서 배타적인 인권을 상상하고, 성적주의 앞에서 인생의 고저를 재단해왔다. 지금 돌아보니 모두 의미없이 내상을 입혀왔던 시간이었다. 21세기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인종주의, 국가주의를 포함한 많은 종류의 억압과 차별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최고의 성적을 만드는 것은 해 줄수는 없을지 몰라도, 최고의 기억을 만들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여행이 적어도 그런 빛나는 순간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족 세계 여행 팁>
1. 여행이 가능한 나이.
이건 아이의 체력과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인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는 사진집이나 동영상을 만들어서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회상을 시키는 것이 좋다.
2. 체험중심의 여행
초등학생을 데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세련되게 관람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아이가 있다면 정적인 것보다는 체험 중심의 것들로 채워야 한다.
3. 경비
여행은 삶과 비슷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경비는 여행의 패턴과 기호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여행 경비를 줄이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숙박비는 1박당 20-30만원에 달하지만, 캠핑을 한다면 5만원 미만으로 줄 일 수 있다. 그렇다고 경비를 아끼겠다고 해서 게스트 하우스나 캠핑으로 모두 채워넣는다면, 고생을 하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들을 놓칠 수 있다. 밸런스가 중요하다. 하루 고생을 했다면 하루는 쾌적한 곳에 숙소를 잡거나, 하루 오랜 시간 이동을 했다면 그 다음날은 근처만 둘러보는 냉온탕 방식이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여행을 쾌적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4. 여행보다는 장기체류
세계 여행의 판타지라는 것이 지구 한바퀴를 돌아오는 것이 생각이 나지만, 그러기에는 지구가 정말 넓다. 욕심을 내기 보다는 지역별로 세분화해서 오래 있는 편이 여행의 퀄러티가 높이진다. 예를 들어 유럽 여행 5개국 7일 이런 것 보다는, 유럽도 서유럽권, 북유럽권, 지중해권 등등으로 나누어서 각기 다른 시기에 여행을 하면서 장소와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괜찮은 마을이나 도시가 있다면 에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장기간 거주를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편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학업이라는 장치를 끼워넣었는데, 런던에 거주하며 1년 유럽 여행을, 캐나다에 거주하며 앞으로 미국과 중남미를 여행할 예정이다.
5. 포스트 코로나
세계 여행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다. 아이가 있다면 안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무래도 실내보다는 노천카페와 식당을 이용을 하고, 밀폐된 곳에 들어가는 횟수를 조절하고 각별히 조심을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 세계 공항은 결항과 지연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적어도 2022년 여름 기준으로 작은 도시로 이어지는 항공편 노선은 취소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여행보험 같은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고, 적어도 대체 루트에 대한 플랜B도 필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