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내내 지속되는 크리스마스
이 곳에서 박사를 한 지는 제법 되었지만 작년 겨울에 한국에 들어가 있다가 보니 캐나다에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과연 올해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까요?"
기상캐스터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늘 하던 말.
하지만 실상은 경험하기 어려웠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바로 직전. 이곳에는 뜻하지 않게 기상 이변으로 폭설이 내렸고,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넘어서 도로가 통제되는 상황이 왔다.
이런 날 한국에서 일을 하는 입장이었다면 출근을 하면서 많이 고생도 했을 터이고,
아니 그 자체가 뉴스여서 뉴스를 만들던 직업을 고른 원죄때문에
눈 오는 날 새벽 4-5시에 출근을 하던 기억도 새록한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상당 수가 월차를 내거나 교통이 끊겼다라고 전화를 하고 출근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밀려왔다. 눈이 오면 눈온다고, 비가 오면 비온다고, 춥다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새벽에 출근하던 과거에 왠지 배신감 마저 들었다.
캐나다의 크리스마스..
동네주민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일하다가 은퇴한 캐나다인들이 많다가 보니,
무엇인가 전통(?)에 가까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 것 같다.
밖에서 볼 때보다, 혹은 영화로 볼 때보다
여기 크리스마스의 중요도와 그 분위기는 훨씬 큰 것 같다.
동네 주민들 2천여명이 한달전부터 동네 공원에 크리스마스 조명등을 걸고,
이웃들과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다같이 모여서 만들었다.
한국에서 성탄분위기가 가장 나는 것은 번화가가 되겠지만, 여기는 한국처럼 거대한 자본이 진열하는 성탄은 아니지만, 이웃들이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소소한 크리스마스 카드와 선물을 주고 받으며, 학교 단위로 지역사회 단위로 작은 행사들과 공연들이 많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 기억은 우리가 도달할 미래에 있을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새벽송을 돌고, 친구와 이웃들과 소담스럽게 보내던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여기엔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는 덕분에
한국에서 중학생인 딸은 작게 커뮤니티에서 태권도 공연을 하고, 학교에서 재즈 밴드 공연에 참여를 하면서,
'너 중학생 맞아?'라고 묻게 될 만큼 평온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여기 크리스마스는
기업이 주도하는 것도 아닌 것이,
소속감도 브랜드화하는 국가주도도 아닌 것이,
심지어 다문화 국가로 특정 종교가 주도하는 것도 아닌 것이,
한 해를 마감하는 커뮤니티 단위의 평온한 행사처럼 느껴진다.
(기껏해야) 와인 한 병에 초콜릿과 같은 작은 선물을 들고 다니는 이웃들과의 파티와 행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송년회와 신년회가 줄줄이 있었던 12월에 돈을 이렇게 안 쓸 수도 있구나라는 '기적'에 감사하며
결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한 해의 마감을 알리는 크리스마스에 잠시 둘러보니,
이렇게 정신 없이 또 하나의 일 년이 가고 있다.
아직 뭐가 뭔지 헤메는 이방인이지만,
올 해도 머리와 마음에 무엇인가를 채워 나가고 있는 한 해였다는 느낌은 가득하다.
메리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렇게 내년도 파이팅.
"이것이다라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