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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사 생존기

밴쿠버 박사 과정이 끝나간다.

by 사십대의 반란

캐나다 박사를 시작한 지 어느 덧 5년이 되었다.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돌아보면 너무 까마득하고,

마치 5년이 4년과, 4년이 3년과 구별이 안되는 시간의 진공 같은 터널을 지나다보니,

어느덧 박사 학위 디펜스를 위한 최종 원고를 제출했다.



영문 8만자의 논문.

이런 걸 내 인생에서 쓰게 될 지도 몰랐지만,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 같다.


20250711_085221.jpg 박사의 과정은 참 길다. 그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게 해주는 자연.


아무리 좋은 회사를 다닌다해도,

결국 회사는 개인을 위한 맞춤형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이상과 합치되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래도 조직의 논리나

문화에 적응을 하다보면, 개인적인 손실 내지 상실을 근본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마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주고

그대로 머무를 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 나올 지에 대한 선택지를 준다.


박사 과정의 최대 장점은 이 모든 시간이 오롯이 나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데, 반대로 이 긴시간을 사실상 홀로 버텨야 하다보니, 생활 감각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버티바보니, 지난 해와 올해 성적 우수 펀딩 두 개를 받아서 8달치 아파트 주거비는 마련이 되었다.

극도의 효율성만을 따지면서 문과 펀딩이 인색한 우리나라에 비해 이곳은 그래도

사회과학 연구에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제 서서히 글로벌 잡마켓으로 나갈 준비를 할 시점이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국제 저널에 논문도 여러 편 출판했고, 토론토, 리옹, 골드코스트, 크라이스트처치,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서 발표도 십여편 할 수 있었다.

20250716_213823.jpg 싱가포르 학회 발표 (25.7)


전 배구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가 변명은 수없이 할 수 있지만,

솔루션을 찾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늦은 나이도, 경제 형편도, 기회도, 시간도

모든게 최적의 조합으로 다가오는 시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아카데미아에서 늦은 나이에 시작을 했고,

만약 내년 초 졸업을 한다고 해도,

이 나이에 나온 선례가 거의 없어서

막연함은 감출 수 없다.

마치 가보면 어디가 나오는 지 모르는 어둑한 산길 앞에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언제나 상황은 주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솔루션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이 도전의 길은

하지않았으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길이고,


이곳 밴쿠버에서 5년을 살게 되는 경험 자체도,

한국에서 십 여일 해외 여행을 나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한 경험이었다.


내일도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걸어온 나에게 말을 한다.

너 참 수고했다.


오늘도 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분들

모두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20251104_074310.jpg 아침마다 산책을 하는 라파지 레이크. 이런 환경에서 책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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