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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이 May 29. 2024

동주의 하숙집터에 세워진, 기념비

일본에서 기억하는 윤동주

오늘은 동주가 사망한 2월 16일이다. 하늘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가?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동주가 교토에서 살았던 하숙집을 찾아갔다. 1942년 10월부터 1943년 7월 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살았던 하숙집이 있던 장소이다. 그가 살았던 아파트는 동지사대 조형예술대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옆화단에 기념비와 그의 생애를 간략히 세긴 대리석이 나란히 서있었다.  


(사진 : 동지사대 조형예술대학, 윤동주 기념비)


기념비의 내용은 서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세겨져 있고, 아래쪽에는 동주의 이력이 간략히 쓰여 있다. 나는 속으로 서시를 읆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의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 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언제 읽어도 순백색의 마음이 느껴진다. 동주의 시를 읽고, 그의 삶을 보면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서시 아래쪽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 봤다. "윤동주 시인이 이곳에 있었던 타케다아파트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시모가모 경찰서에 연행된 것은 1943년 7월 14일이었다. 북간도에서 태어난 그가 1942년 일본에 건너와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청렬한 시를 쓰던 곳이, 이곳 타카하라이다. 1945년 2월 6일, 조국의 해방을 기원하면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십칠 세의 젊은 나이로 생애를 마감하였다. 윤동주 시혼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하던 이곳에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동주의 시혼이 살아 있다는 내용은 맞다. 내 마음속에 동주의 서시가 들어와서 그가 살았던 타케다아파트터까지 나를 이끌었으니 말이다. 2018년 어느 날에 들어왔다. 종로의 윤동주 문학관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서시를 읽는데, 그동안 내가 알았던 서시가 아니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관통한 강력한 빛이 진한 울림으로 나에게 들어왔다. 서시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에는 윤리와 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시를 가슴 품고 머리에 새겼다. 그날 이후로 서시와 같이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느 사이에 비가 그쳤다. 우산을 접고 사진을 찍었다. 날씨가 맑아졌다. 해가 났다. 동주의 시혼을 품은 사람들의 삶은 지금의 날씨처럼 맑고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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