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다니던 교회에서 휴직을 했다. 거의 30년을 다녔던 교회를 휴직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내 마음속은 논란 정도가 아니라 큰 폭풍이 왔었다. 사실, 사임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휴직하기로 했었다. 지금은 주변의 권유 등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직 전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예배를 드렸고, 주일에는 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봉사해 왔다. 해외여행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휴직을 하면 예배를 어디서 드릴 것이냐가 가장 큰 관심 사안이었다. 평판 좋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예배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교회의 예배형식, 분위기, 주보 등을 보고 배우는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시작된 휴직이 7개월이 지났다.
휴직 직후에는 거주지 인근의 교회 3곳에 갔었다. 두 교회에 갔을 때 지나친 관심을 받아서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한 교회는 갔었는데 9시 예배가 없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영상예배를 드렸다. 그때가 12월과 1월이어서 날씨가 추웠다. 영상예배를 드리고, 날씨가 풀리는 3~4월부터 좋은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에 5~6개월이 지났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당장 내일부터 가야지. 서울의 좋은 교회가 어딜까?' 먼저, 떠오른 교회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였다. 검색해서 보는 사이에.... 과거 조용기 목사님과 가족들 관련 여러 좋지 않은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다. 이재철 목사님이 생각났다. 이재철 목사님이 담임 목회를 하셨던 100주년 기념교회 검색을 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교회까지 가는 시간도 체크해 봤다. 넉넉히 2시간 정도 걸린다.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교회에 가기로 결정했다. 마음이 벌써 들떴다.
버스 타고, 전철 한 번 환승해서 합정역에 도착했다. 걸어서 교회 인근에 도착할 즈음에 차량 봉사하시는 분들이 보였다. 입구에 도착하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지에 대한 큼지막한 안내판이 서있었다. 예배시간이 40분 정도 남았다. 당초에 집에서 빨리 출발한 것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을 둘러보려는 생각을 했었다. 묻지 않고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우측으로 한국기독교 100주년 선교기념관이 보였다. 외관이 소박해 보였다. 들어가 봤다. 1층에 사무실이 있고 2층 계단을 올라가 봤더니 예배를 위한 찬양을 하고 있는 듯하여 조용히 내려와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걷다 보니 우측으로 묘 한 기가 보였다. 서교동교회장로강##의 비석이었다. 나무 계단을 밟고 위쪽으로 더 올라갔더니 십자가와 묘비 등이 눈에 들어왔다. 19세기말부터에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와서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였다. 천주교 성지는 여러 곳을 가 봤지만, 기독교 묘(성)지는 처음 봤다. 가까이 다가갔다. 각 묘지마다 행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몇 분의 기록을 읽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예배 20분 전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예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내려오다가 주차 안내하시는 분에게 현장 예배 드릴 수 있는 예배당을 물었다. 본관 지하 3층으로 가면 되는데,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 곳곳에 안내하시는 분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예배실을 물을 때마다 모두가 친절하고 밝게 안내해 줬다. 벽에 붙어 있는 자리와 끝쪽에 접이 의자는 빈자리가 보였으나, 장의자는 자리가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안내하시는 분이 한 명 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자리 비어 있는 장소로 안내해 줬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도하고 예배드릴 준비를 했다. 빈자리가 한 곳도 없이 가득 메워졌다. 예배는 경건했다. 성시교독, 신앙 고백, 대표기도, 교회소식, 성경봉독, 말씀선포, 예물봉헌, 봉헌기도, 축도와 중간중간 찬송가를 불렀다. 성경말씀은 에베소서 1장 1~2절이었고, 설교제목은 '은혜와 평강이'이었다. 은혜는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받는 것이다. 평강은 내 안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관계의 평화도 중요하다. 죽었던 나를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값없이 구원을 받는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과 관계 속에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주보와 나눠준 인쇄물을 봤다. 참으로 소탈했다. 주보가 흑백의 A4 한 장으로 양면 인쇄되어 있었다. 주일예배와 수요성경공부, 교회소식 란이 가장 많은 면을 차지고 있었다. 그리고 봉사위원 명단, 교회 예배통계, 각종 안내가 나머지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하 3층에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꽉 찬 예배실에 불이 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빠져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보를 자세히 보다 보니 주일 예배 안내 면의 맨 아래쪽에 '홍보관예배실(지하 3층) 비상구는 예배실 정면 우측에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의 염려를 불식시켜 주는 준비와 안전사고의 대비가 고마웠다. 주보와 함께 받은 두툼한 종이를 펴 보았다. A3 2장이었다. 2024년 5월 결산보고서였다. A3는 반으로 접으면 A4 2장이다. A4기준으로 7면에 교회재정에 대한 내용이 가득 차 있었다. 원단위로 수입, 수입지출 비교, 통장별 잔액현황, 건별 세부 지출 내역(일자, 내역, 금액)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고, 마지막에는 감사의견까지 있었다. 100주년 기념교회에서는 매월 이렇게 재정 결산보고서를 모든 교인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주보와 결산보고서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는데...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교회 제2별관 제2사회봉사관이 보였다. 점심밥을 먹고 나서 다시 사회봉사관쪽으로 가서 안쪽을 살짝 봤다.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들어갔다. 두리번거렸더니 빈자리가 보였다.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가방을 빈자리에 놨다. 책장에는 책도 많이 꽂혀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책이 한 권 있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를 뽑았다. 머리말을 읽고 나서, 목차를 흩었다. 끌리는 몇 가지 주제를 읽었다. 그중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여행을 기억하게 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오늘의 예배 여행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 지금 글을 쓰는 중이다. 지금 여기는 100주년 기념교회 사회봉사관이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자세히 둘러보고 저녁 약속시간에 맞춰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이재철 목사님을 현장에서 뵙지는 못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많은 설교를 들으며 수없이 뵈었다. 설교를 듣는 과정에서 그분을 존경하게 됐다. 그분이 은퇴했지만, 이재철 목사님으로 인해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를 방문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리더의 중요성을 더 실감 나게 하는 예배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