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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Mar 08. 2024

수수부꾸미와 나


작년 봄, 아주 오랜만에 광장시장을 다녀왔다.


그때 남편은 두께가 있고 품이 넉넉하여 멋스럽게 입기에 좋은 오버사이즈 체크무늬 코트를 단돈 이만오천 원에 구입했다. 백화점과 아웃렛에서 겨울 코트를 볼 때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번번이 거부의사를 표명하던 남편이었지만 광장시장에서는 주저하지 않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코트는 아쉽게도 단 하루(코트를 산 날)밖에 입을 수가 없었다. 봄의 끝자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소 고대의 유물이 연상되는 금색 귀걸이를 샀다. 금실이 촘촘히 반짝이는 보라색 에코백을 사기도 했다. 블링블링한 것들을 각 삼천 원을 주고 샀다. 


총 삼만 천 원을 지출한 우리는 이천오백 원짜리 수수부꾸미 두 개를 샀다. 국산 수수와 팥이 100프로라는 문구에 이끌려버렸다. 요즘 세상에 수수자체를 수수답게 맛볼 수 있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나란히 수수부꾸미 하나를 먹었다. 달지 않다던 팥은 정말로 달지 않았다. 그것은 숭덩숭덩한 식감만을 내며 희생을 감수하였고, 덕분에 나는 수수의 보드라우면서 거친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갑작스레 시냇물과 공기 속에 켜켜이 쌓인 나무 내음이 흐르는 시골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토속적이라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수수의 매력에 나는 수수해졌다. 분명, 시공간을 초월한 맛이었다 - 내심 요런 게 생활 속 멀티버스라며 조용히 들썩였다. 


나는 신이 나서 광장시장에 또 가자고 말했다. 아, 물론, 홀라당 까먹었다. 


효력 없는 구두 약속을 기억한 건 남편이었다. 지난주 무언가 서운한 목소리로 광장시장에는 안 가냐고 물었고, 그제야 나는 수수부꾸미를 소환해 냈다.






삼 일간의 연휴가 이어진 삼월의 초봄에 *그곳*을 다시 방문했다.


거의 일 년 만에 찾은 광장시장의 모습은 작년과 동일했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밝은 머리칼들이 군데군데 드러났다. 관광명소로 거듭난 광장시장에는 외국인들이 북적였다. 심심해서 혹은 괜히, 근처를 지나다 국수한 그릇을 호로록 먹거나 김밥 한 주먹을 싸고 푸짐히 먹을 수 있는 곳이 더는 아니게 되었다.

외국에서 살 적에 상대적으로 한국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괜히 위축되기도 했었으니, 분명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기도 했다. 서울 하늘 아래서도 싸게 걸터앉을 수 있던 그루터기가 이제는 수명을 다한 듯했다.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나는 발 디딜 틈을 찾아 수수부꾸미를 찾았다. 의도된 행동은 보란 듯이 적중했다. 종이컵에 담긴 뜨근한 수수부꾸미를 먹으니 주위가 한산해졌다. 아직은 변치 않은 시간이 양 갈래로 흐르는 듯했다. 


그뿐은 아니었다. 징글징글하게 절대로 달라짐이 없는 것도 있었다. 


광장시장의 미로 같은 구조였다.


이번 방문에도 한동안 헤맸다. 지나온 모퉁이를 다시 돌아 같은 유리문을 통과하고 같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보나 마나 한 안내도를 몇 번이나 보았다. 그나마 의지할 만한 정보에 시각을 기울이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한 마디를 휙 던졌다. 옛날 거라고 했다. 


결국은 화장실에서 나오는 할머니 한 분을 황급히 붙잡았다. 가판에 수북이 옷을 쌓아놓고 파는 데를 여쭈어 보았다. 알려줘도 못 찾는다며 앞장을 서주셨다. 만일 할머님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태 광장시장을 벗어나지 못했을 테다.






높이가 일정하지 않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니 '옷들의 무덤'이 보였다.


그것들은 어떤 이유에서 버려졌을 테다.


덥석 집어든 사람이 몇 번 입지도 않고 변덕을 부린 탓인지, 출고조차 해보지 못한 안타까운 처지이었는지, 유행에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짐을 당했는지,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옷들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가판을 지키고 있었다.


아주 수북했다. 과장을 (꽤) 보태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듯했다. 아무튼 그것들은 가판대 뒤의 할머님과 더불의 종로의 풍토가 된 듯 보였다.


나는 익숙한 옷 내음을 파고들었다. 지난번의 액세서리 가게를 찾았다. 온통 금물결이었다. 자그마한 가게에 두 사람이 들어서니 안이 꽉 차버렸다. 그래도 신중히 귀걸이 세 개를 골랐다. 반짝이는 것들을 꽃샘추위에 꺼내 입은 패딩 주머니 안으로 쏙 넣으니, 봄이 반짝였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그는 광장시장에서는 수수부꾸미 정도를 목적에 두고 쇼핑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초심자였다. 정확한 치수나 일정한 시즌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구제 시장에서 내 몸과 마음에 딱 맞는 걸 단번에 산다는 건 아주 절묘한 우연이 주어져야 가능한 일인데, 지난번에 너무 운명처럼 체크무늬 코트를 산 탓인지 무언가 시무룩하고 미적지근한 눈으로 옷들을 뒤적였다. 

그래도 그냥 돌아가는 일만큼은 싫었는지, 검은 코트 하나를 두고 고민을 했다. 나는 은근 뒤로 물러나 훈수를 두는 대신에 오롯한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솔직히, 친절이라기보다는 음흉한 속셈이었다. 남편의 쇼핑력이 일취월장하여 개성 있는 쇼핑메이트가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시 찾은, 광장시장은 여전했다. 


수면 위로 뭔가가 두둥 올라왔다. 


오래 쓰고 입기에 무난한 옷과 아이템을 좋아한다며 쟁여둔 무채색의 것들이 사이로 반짝이는 것들이 빛을 부여했고, 가볍고 실용적인 패딩에 대한 확고함 옆으로 영국 신사가 입을 법한 초겨울용 코트가 묵직이 존재를 드러냈다. 시들어가던 욕구들이 무덤 언저리에서 되살아 나는 듯했다. 싼 가격으로 무언가를 들추어내며 고유한 색을 선물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무심코 수수부꾸미를 생각했다(나는 정말 무섭도록 먹을 생각뿐이기도 했다). 부꾸미를 택배로 시킬 궁리를 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둘러 수수부꾸미를 굽고 있었다. 벌써 맛있기까지 했다. 


만일 자신도 모르게 하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정체성을 부여한다면, 나는 아마도 블링블링한 것들을 좋아하는 먹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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