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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Dec 15. 2022

[수줍은 사찰 산책] 수줍은 첫발2

'국립중앙박물관'과 '아난'

  시간이 남고, 할 일이 마땅히 없을 때 가끔 찾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널찍하고, 붐비지 않고, 볼거리 많고, 무엇보다 ‘공짜’여서 좋아합니다. 널찍한 연못에서 잉어 떼를 구경하다가, 전국 각지에서 모셔 놓은 탑들 사이를 거닐다가, 폭포 앞에서 멍 때리다가, 지루할 때 즈음 박물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 박물관 들어가기 전 드러나는 ‘건물의 프레임 사이로 드러나는’ 탁 트인 전망, 정말 멋집니다. 들어가서는 가방을 보관소에 맡겨놓고, 기념품 가게에서 이 물건, 저 상품을 만지작 거리다, 결국은 내려놓고는 허적허적 3층을 향합니다. 3층에는 앉기 편한 소파들이 많거든요. 한 자리 차지하고, 책도 읽고, 일도 하고, 음악도 듣고, 심심하면 유적들 사이를 허적허적 걷고, 그러다 배고프면 근처에서 맛있을만한 걸 찾아 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회사 짤리고, 프리랜서 명함을 판다면 주소는 꼭 ‘국립중앙박물관 3층’으로 하겠다고 마음먹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난’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책 몇 권 읽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박물관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한 해에 한 편씩 ‘괘불’을 전시해 왔다고 합니다. ‘괘불’이란 괘도에 걸어 놓는 커다란 ‘불화’를 말합니다.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높이가 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입니다. 절에서도 특별한 야외 예불이 아닌 이상 쉽사리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무게도 100kg가 넘기에 걸어 놓는 것만으로도 큰 일이라고 하네요. 박물관에서는 2층과 3층이 트여있는 높다란 벽에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덕분에 2층에서도, 3층에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말 생각 없이 찾은 박물관 3층에서 예산 수덕사의 ‘괘불’을 만났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

  사실, 전 ‘불화’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큰 도화지에 이런저런 인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게 ‘투머치’하게만 보였습니다. 기껏해야, ‘깨달은 자들의 단체사진’ 같다거나, ‘저거 그린 사람 정말이지 개고생 했겠군’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괘불의 설명을 위해 설치해 놓은 키오스크 화면을 열없이 들여다보다 흠칫,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키오스크

  커다란 부처그림, 정확히는 ‘노사나불’, 바로 옆에 놀랍지만 당연하게도 ‘아난’이 서 있었습니다. 상상 속의 ‘아난’은 날카롭고 딱딱하고 타협 없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기자’ 출신인 ‘김훈’ 작가님의 삭발버전 정도랄까요? 하지만 눈앞의 ‘아난’은 달랐습니다. 뽀얀 피부에 발그레한 볼, 뭘 듣고 있는지 입은 ‘헤~’ 벌어져 있습니다. 저 표정을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표정이 이 글을 쓰게 만든 ‘수줍은 첫발’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난’이 눈에 들어왔을 때부터 괘불에 대한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난’의 옆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오른쪽에 '선녀'같은 사람은 누구지? 아래쪽에 있는 ‘괴물’같이 생긴 이들은 뭐하고 있는 거지? 부처님 머리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미니미 부처님’들은 또...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투머치’한 ‘단체사진’ 같은 그림이 어느새 수백, 수천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거대한 스토리로 보였습니다. 저거 다 뜯어보려면 평생도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괘불 주위에 있는 불상들까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새로운 '취미'가, 이렇게 난데없이 반길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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